남미 대륙을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린 안데스산맥이 볼리비아에선 알티플라노고원을 중심으로 2개의 산맥으로 갈라진다. 고원 동쪽을 오리엔탈산맥이라 하고 서쪽을 옥시덴탈산맥이라 한다. 옥시덴탈산맥의 주봉이자 볼리비아 최고봉인 사자마(6천549m)는 라파즈에서 차로 5시간 정도 떨어진 칠레국경 남서쪽에 위치해 있다.
'세계오지탐사'안데스팀(단장 김춘생)이 사자마산에 고소캠프(5천700m)를 설치한 시간은 볼리비아 체류 18일째인 작년 7월25일 오후 4시께. 해발 4천500m에 위치한 베이스캠프를 오전 9시30분에 출발, 깎아지른 설사면과 칼처럼 뾰족뾰족한 얼음 기둥(아이스-스텔럭타이트)지대를 6시간 넘게 걸려 어렵사리 통과한 뒤였다. 텐트는 북릉 암벽 왼쪽 설상에 설치됐다.
"내일이면 좋았든 싫었든 여러분들의 탐사와 원정은 끝이 난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돌처럼 딱딱한 눈을 치워 힘들게 텐트를 설치한 뒤 저녁을 먹기 위해 모인 식당텐트에는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여명이 채 가시지 않은 텐트 밖은 벌써 영하5도.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내려간 상태였다. 자신이 직접 끓여 만든 특별식을 대원들에게 일일이 나눠준 박주환원정대장(47)의 얼굴에는 사뭇 비장감마저 돌았다. 음식을 받아든 대원들도 적잖이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은 바람이 걱정인 것 같았다. 다음날 오전 1시. 볼리비아에서의 마지막 등정을 위해 대원들은 서둘러 일어났다. 복장을 갖추고 장비를 착용해 밖으로 나섰지만 우려했던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기온은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져 있고 밤새 텐트를 들썩였던 바람의 기세도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태로는 무립니다". 고산가이드의 충고를 잠자코 듣고 있던 원정대장은 대원들에게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10분 20분 30분….사방 곳곳에 얼음이 박힌 텐트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또다시 1시간. 하지만 바람의 기승은 여전했다.
'여기서 썩 나가(Get Out Of Here)'라는 뜻의 사자마가 결코 그냥 붙인 말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 두 시간쯤 그렇게 흘러갔다. 가만히 시계를 내려다보던 대장은 굳은 표정으로 대원들에게 출발을 지시했다. 정상까지 약 7시간 소요. 햇볕을 받아 설 질이 물러지기 전인 오후2시까지 하산해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출발 데드라인은 오전 4시였기 때문이었다. "대신 오늘은 컨디션이 좋은 세사람만 오른다".
오전 3시20분. 마침내 등정이 시작됐다. "다녀오겠습니다""그래 조심해라"서로를 굳게 맞잡은 손에는 가벼운 떨림이 전해졌다. 바람소리 요란한 칠흙같은 어둠 속, 헤드랜턴의 불빛도 점점 잦아들었다. 오전 6시. 서서히 동이 터 왔다. 텐트 안에도 조금씩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무전교신을 하던 원정대장은 담배 한 대를 피운 뒤 망원경을 꺼내 밖으로 나갔다.
은빛 설릉위로 가물가물한 점 3개. 대원들의 모습이 망원경에 희미하게나마 잡혔다. 대장은 비로소 긴 한숨을 내쉬었다. 대원들은 군데군데 얼음이 박힌 100여m 높이의 암벽에 고정로프를 설치, 혼합등반으로 무사히 통과한 뒤 정상을 향해 순조롭게 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애를 태우던 바람도 언제 그랬냐는듯 잠잠해진 지 오래였다.
오전 9시께. 공격대원으로부터 교신이 왔다. "대장님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습니다. 정상인 것 같습니다""그래 수고했다. 조심해서 내려오너라".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대장은 말을 길게 잇지 못했다.
멀리서 보면 럭비공 모양의 정상은 '정상인 것 같다'라는 애매한 말을 전해준 대원들에 의해 마침내 정복당하고 만 것이다. 촬영 기록담당 방경환(26.전남대3), 식량 행정담당 마림(25.강원대3), 수송 의료담당 조상희(20.천안공전2).
볼리비아 최고봉이자 안데스산맥 15번째 고산인 사자마를 한국인 최초로 등정한 이들 세 청년과 당일 몸이 좋지 않아 등정에 참가 못한 등반대장 오세민(26.대전대4)군은 비록 전문산악인들의 엑스피디션에 비교할 바 못되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한 한국의 아름다운 젊은이들로 기록된 것이다.
글=진용성기자 ysjin@p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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