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2 한.일 월드컵 일본은 이렇게 준비한다 -(5)시민의식

장면1. 작년 11월 광주와 전남북 지역 40개 관광호텔 대표들의 모임. 이 자리에서 호텔대표들은 "정부가 93년 슬롯머신 등 관광오락업을 사치향락사업으로 매도해 호텔업계가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슬롯머신과 증기탕 영업을 허가해 주지 않으면 월드컵 한국 숙박사업단과의 FIFA패밀리 객실 예약을 취소하고 월드컵 기간에 외국인 투숙을 거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전국 486개 관광호텔 대표들이 서울에서 '월드컵 투숙 보이콧'결의대회까지 계획하다가 비등하는 반대여론과 정부의 강경한 입장에 부딪히자 스스로 철회한다.

장면2. 지난 18일 일본 파친코 오락장의 90% 이상이 가입한 전일본 유기사업 협동조합 연합회 이사회. 회의에서 연합회 이사들은"오는 5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두 달간 신형기계는 도입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그 이유는 매출이 다소 줄더라도 신형기계를 들여 올 때 입회해야 하는 경찰력을 월드컵 경비에 돌릴 수 있도록 하려는 것.

경찰청은 "전국의 1만 7천여 점포가 월 1회씩만 신형기계를 설치하더라도 입회 경찰관이 평균 3만 4천명이 필요한데 그 인원을 치안에 돌리면 월드컵 보안대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쌍수로 환영했다.

2002 월드컵 성공의 열쇠는 무엇일까. 정부와 월드컵 관계자들은 물론,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도 시민들의 헌신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축제 분위기,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휘로 이루어지는 질서와 청결, 바로 그런 것이 훌륭한 경기장이나 교통.숙박시설보다 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더구나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이번 월드컵은 이웃나라인 양 국가의 모든 것들, 특히 시민의식까지 좋은 비교가 될 것이라는 지적들이 계속 제기돼 왔다. 60억 세계인이 월드컵 대회기간 동안 미디어를 통하든 직접 경기장을 관람하든 '좋은 나라''선진 국가'라는 이미지를 갖게 만드는 것은 결국 시민들 스스로의 몫일 것이다.

일본의 3대 차이나타운의 하나인 고베(神戶)시 난칸마치(南京町)의 유명한 고기만두집 로쇼기 앞. 일본에서 싸고 맛있는 식당이라면 어디든 그렇듯 여기도 점심이나 저녁 때가 되면 손님들로 그야말로 장사진을 이룬다. 그러나 가게 앞 빈터에서 많을 땐 수백명이 뱀이 똬리를 틀 듯 둥글게 줄을 서 기다리지만 혼란스러움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체질화된 줄서기 습관에다 새치기하려는 사람도 없기 때문.

신기한 듯 바라보는 기자에게 더욱 놀라운 것은 줄을 서다가도 볼일로 잠시 이탈하게 되면 조금전 서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줄의 맨 뒤로 찾아간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고속철도 신칸센(新幹線) 안. 도쿄에서 오사카에 이르는 3시간 동안 한번도 휴대전화 벨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미리 진동 모드로 바꿔 놓아 신호가 오면 열차 연결 칸으로 나가 전화를 받거나 제자리에서 통화하더라도 옆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들릴 듯 말듯 소곤소곤 말한다.

또 열차가 목적지에 다다르면 승객들 대부분은 자기가 마신 음료수 캔이나 종이컵 등 쓰레기를 직접 챙긴다. 승무원이 치울 때까지 좌석 밑에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쓰레기들을 챙겨 플랫폼마다 널찍하게 마련된 분리수거 쓰레기통에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나중에 오는 승객에게 깨끗한 좌석을 남겨 두기 위한 배려가 인상적이다.

운전자들의 느긋한 교통문화도 부러운 대목. 택시와 승용차를 비롯, 모든 차량들은 아무리 정체가 심해도 횡단보도와 교차로 등의 정지선을 꼭 지킨다. 옆 차로가 비어도 좀처럼 차로 변경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끼어들기나 급차로 변경같은 난폭운전도 찾으려야 찾기 힘들 정도. 위급한 때가 아니면 경적을 사용하는 경우도 드물어 6~8차로 대로 변을 걸어도 시끄럽지 않다.

몇년전 국내 한 TV사가 이를 자동차 정지선 지키기 계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크게 히트치기도 했지만 이후 지금까지 별로 나아졌다는 인상은 들지 않는다.

도꾜 한국지사에서 2년째 근무한다는 한 한국대기업 일본주재원은"무질서가 판치고 조금만 늦게 출발해도 빵빵 경적을 울려 대는 한국의 교통문화에 익숙해 있다가 일본에 와서 목격한 선진 교통의식은 하나의 큰 문화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이명직기자 jig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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