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소련 공산당시절, 가장 무서운 위원회는 '위원회설치연구위원회'라는 블랙유머가 있었다.정적과 국민을 각종 위원회 조직으로 얽어매기 위해 기상천외한 위원회를 끊임없이 양산해내던 공산당 권력층이더이상 만들어낼 만한 그럴듯한 위원회 명칭이 없자 '어떤 위원회를 설치할까를 연구하는 위원회'를 만들기로 결의했다는 정치풍자였다.한마디로 위원회가 남발되는 걸 희화적으로 빗댄 유머다.
지난 주말 등장한 '부패방지위원회'의 출범을 보면서도 국민들 중에는 이제부터 부패가 없어지겠구나 하는 기대보다는 또 무슨 위원회냐는 시큰둥한 반응이 적잖았을 것 같다.지금 정부 중앙부처와 전국 자치단체에 설치된 이런저런 위원회들은 자그마치 6천여개. 그 중 정부기관산하 위원회 1천516개는 지난 한해 동안 회의 한번 안해본 간판뿐인 위원회들이다.
특히 DJ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통령 직속이나 독립위원회로 생겨난 위원회만도8개나 되지만 집권초기에 만들어진 제2건국위원회 같은 곳은 9억2천만원이나 되는 예산을 1년내내 연찬회니 워크숍같은 행사비용에 썼다는 부정적인 비판보도도 나왔다.
그처럼 유명무실한 위원회가 곳곳에 널려있고 대통령 처조카게이트로 세상이 시끄러운 마당에 부패방지위원회라는 게또 생겨났으니 부패척결 기대보다는 '웬 위원회?'란 냉소가 앞설 수밖에 없다. 더구나 새로 만들어낸 부패방지위원회도 실상은 이미 3년전에 현 정부가 똑같은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었던 '반부패 특별위원회'와 맥락이 같은 위원회다.
'반(反)'자와 '특별'을 빼는 대신 '방지'를 끼워넣었을 뿐 대통령직속기구인 것이나 수사권을 안준 거나 위원이나 지휘자가 기존 사정기관 출신 조직이란 점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더구나 반부패 특별위원회를 만든 이후 지난 3년동안 부패가 현저히 줄어들었는가 하면 아쉽게도 천만의 말씀이다. 반부패특위를 만들 당시 정부는 국제투명성기구의 심사에서 세계 50위로 뒤떨어져있는 한국의 부패지수를 임기말까지20위권으로 끌어올린다는 명분으로 설치했었다.
그러나 위원회 설립후 2000년과 2001년에 여전히 48위와 42위로 처져 '뇌물공화국'이란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목표연도인 올해는 오히려 각종 게이트들이 더 큰 규모로 터져나오고 있다. 부패의 속성이 법이나 위원회가 많아진다고 줄어드는 것이아님을 증명한 셈이다.
그렇다면 옥상옥의 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위원회도 못미더워서 위원윤리강령까지 겹겹이 만들어도 국가부패지수가 나아지지 않는 원인은 어디 있는 것인가. 그것은 법과 위원회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디오게네스의 말처럼 '큰 도둑이 작은 도둑을 쫓는'식으로 권력층 부패는덮어두고 아랫물만 쫓는 데 대한 불신과 냉소에 있다.
10만원 먹은 작은 도둑은 배짱이 작아 보이고 1억원 먹은 도둑은 TV카메라 앞에 당당히 고개를 치켜드는 이상한 세상이 되니까 10억원정도 먹을 수 있으면 감옥에 갔다와도 좋다는 청소년이 20%나 넘게 나오게 되는 것이다.정부가 중복된 위원회를 만들어서라도 부패를 없애야겠다는 충정은 좋은 뜻으로 이해하고 또 성공하기를 바란다. 다만 먼저 가슴에 새겨둬야 할 것은 큰 도둑이 작은 도둑을 쫓는 식의 부패척결은 더이상 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다.
최근 잇단 게이트 연루 권력층 비리는 바로 지난 3년간 반부패 특별위원회가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 생긴 비리들이었다. 그런 큰 도둑들의비리들을 숨겨두고 묻어줘오다가 터진 것이 이번 게이트였기에 그 어떤 새로운 위원회도 일단 불신부터 당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기왕에 만들어진 위원회의 성공을 기대하고 부패척결의 비결과 해답을 깨우쳐보라는 뜻에서 옛 선조의 일화 하나를 오늘 장관이 된 분들과집권층께 소개 드린다.
-김수평이란 호조(戶曹)의 하급관리가 궁궐곳간의 물품을 점검하는 중에 고관대신이 들어왔다. 그 대신이 은(銀)으로 만든 바둑알을 보더니딸아이 노리개로 주겠다며 몇개를 집었다. 그러자 김수평은 얼른 자기도 한움큼 집으며 이렇게 말했다. '대감께서는 따님이 한분뿐이나 소인은딸이 다섯이나 되니 더많이 가져가야겠소'-.
김정길(본사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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