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이야기-작가 경력과 실력은 비례할까

'국전 입.특선, ××대전 초대작가, 외국전시회 몇회…'작가들이 개인전을 열면서 함께 내놓는 팸플릿에는 그 작가의 경력란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것을 흔히 보게된다. 요즘들어 경력란에 간략하게 몇줄 쓰는 작가들이 늘어났지만, 중견작가라면 한면 전체를 할애하는 것이 보통이고, 심지어 몇쪽에 걸쳐 자신을 소개하는 이들도 있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그림 판매와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림 애호가들을 현혹(?)시키고 그림값을 올리는데 이보다 좋은 방법이 있겠는가.

그런데 과연 작가의 '빛나는 경력'과 그림 실력은 반드시 비례하는 걸까?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는 대한민국미술대전은 물론이고, 각종 공모전의 불합리한 심사과정을 살펴보면 여기에 대한 해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지난해 경찰은 미술대전 비리에 대한 수사를 벌여 한국미술협회 전현직임원 등 20여명을 입건했다. 지역에서도 십여명의 작가.관계자들이 불려갔으며, 이중 몇명이 금품을 주고 받은 혐의로 입건된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 관계자의 증언. "얼마전만 해도 국전 입상권에 들려면 최소 몇백만원에서 몇천만원이 필요했습니다. 관계자나 중간 브로커들이 미리 전화를 걸어 공공연히 금품을 요구하는게 보통이었죠. 입.특선자의 80, 90%는 금품이나 출신대학.파벌 등에 따라 미리 정해졌다는 얘기가 많았아요" 몇몇 공모전을 제외하고 큰 규모의 공모전들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됐다는 것.

그렇다면 실력있는 작가들에게 상은 하나도 돌아가지 않는 것일까. 심사 과정에서 실력있는 작가들에게 입.특선의 10, 20% 정도를 배정하기도 하고, 두개의 파벌이 팽팽하게 의견이 대립할 경우 실력있는 작가에게 우연히(?) 대상이 돌아가는 수도 있다. 대구의 몇몇 국전 대상작가들은 이런 경우에 속한다.

또다른 작가의 얘기. "작가들의 실력은 작가들이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근데 초대작가 타이틀을 가진 일부 작가의 경우 일반인들에게 얘기하기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이런 경향은 학원운영을 위주로 하는 서예.문인화 부문에서 심각하고, 화랑 등을 통해 작품을 판매하는 동.서양화 부문은 훨씬 덜하다. 이때문에 십수년전부터 젊은 화가들은 국전에 작품을 내지 않은 것은 물론, 공모전이라면 거부 반응부터 보여왔다.

큰 규모의 화랑이거나 현대미술 화랑들은 작가에 대한 판단기준에 공모전 경력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게 보통이다. 애호가들이 그림을 고를 때 작가의 경력보다는 자신의 취향이나 작품 자체를 놓고 판단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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