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문화적 자아나 자화상을 확인하고 밝히는 데는 문학작품이 갖는 비중이 크고 소중하다. 모국어를 통해 그 민족의 숨결과 상상력을 투사한 문학작품의 시간적인 집합은 바로 삶의 현장이며, 가장 구체적인 역사의 자료로 자리매김하게 마련이다.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이 다투어 문학작품의 현장과 문인의 생가, 창작의 산실을 보존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세계적인 명소로 각광을 받는 경우가 너무나 많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찍부터 빼어난 문인들을 낳은 대구에 그런 명소는커녕 문인의 생가나 창작의 산실 하나 제대로 보존돼 있지 않다. 최근 경북 지역에서 일고 있는 문학의 정체성 찾기와 문인 생가의 명소화 움직임과도 대조적이다. 안동에서는 '육사 기념관', 경주에선 '동리·목월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 있으며, 영양에는 지난해 이미 소설가 이문열씨 생가 옆에 '광산문학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던 민족시인 이상화(李相和·1901~1943)가 1927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창작의 산실로 삼았던 옛집(대구시 중구 계산2가 84 계산성당 뒤편)이 도로 개설 예정지로 지정돼 헐릴 위기에 놓였다. 최근 이 고택을 가로질러 너비 6m, 길이 136m의 소방도로를 내는 도시계획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중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이 고택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는 한 주변의 오래된 한옥 몇 채와 함께 2005년부터 철거할 예정이라 한다.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이 살던 집도 인근에 있었던 이 일대가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문인과 대학교수·예술인 등 20여명의 대구시민들이 '민족시인 상화 고택 보존 100만명 서명운동'에 나섰다. 이 서명운동은 이 일대를 유적지 소공원으로 지정하려는 뜻을 가지고 앞으로 '상화 고택 보존 시민운동본부'를 결성, 후원금 모금과 기념관 건립을 위한 자료와 유품 수집에서도 나설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이미 4년 전부터 대구시는 상화의 고택과 인근 땅을 사들여 원형대로 단장한 뒤 '상화기념관'으로 보존하면서 시비(달성공원)·동상(두류공원)·묘역(화원)을 벨트화하려는 구상을 해 왔다. 그러나 3억1천만원에 불과한 이 곳의 부지 매입 문제를 두고 제자리걸음만 거듭해온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왔었다. 서문로 2가에 있던 그의 생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 고택이라도 보존돼 대구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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