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하늘을 우러러 온통 부끄러움...

이태리 작가가 만들어낸 동화의 주인공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 사람 역시 피노키오처럼 특정상황에 따른 반응 즉 피노키오 효과(Pinocchio Effect)를 나타낸다는 전제하에 개발된 장치가 바로 폴리그래프(Polygraph), 거짓말탐지기다.

거짓말을 할때 나타날 수 있는 생리적 변화가운데 맥박.혈압.땀.호흡 등의 변화를 측정해 거짓말 여부를 가리는 것인데 폴리그래프의 정확도는 약 90%, 따라서 법률적 증거효력은 없다. 그러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에 관한 대배심 증언에서 클린턴 전 미대통령은 1분에 20여차례나 코를 만져 피노키오 효과를 충분히 입증했다.

거짓말을 할때 코안의 발기조직이 충혈돼 가려워져 코를 긁거나 문지르게 되므로 클린턴은 그때 거짓말쟁이임이 탄로난 것이다. 이처럼 거짓말을 의도적으로 하게되면 흥분.긴장.갈등의 심리적 불안상태에 빠지는게 보통인데 작금 한국의 거짓말박사들에게도 '피노키오 이펙트'가 통할는지 모르겠다. 워낙 낯들이 두꺼워서.

한국정치사의 거짓말행진은 참으로 눈부시다. 5.16쿠데타때 군인들이 내건 혁명공약 '제6'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는 거짓말이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군대복귀는 커녕 20년독재에 국민을 숨막히게 했다.

그에 앞선 이승만 자유당 정권은 6.25가 터져 공산군이 쳐내려 왔을때 국민들에겐 '북진통일'을 외쳐놓고는 정작 정부는 한강철교를 폭파시키고 도망쳐버렸다. 국민을 내팽개치고서도 서울 사수를 외친 후안(厚顔)과 "다시는 나같이 불운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는 무치(無恥)는 그야말로 메가톤급 거짓말이다.

◈거짓말로 점철된 정치사

정권의 거짓말은 다시 권력층.정치인의 거짓말로 계승된다. 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터졌을 때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강민창 당시 경찰청장의 거짓말은 그것으로 끝난게 아니었다. 수지 김과 서울대 최종길 교수의 의문사에도 거짓말은 인계되고 인수됐다. 그것도 중앙정보부라는 국가권력기관에 의해서.

거짓말을 할 적마다 이빨이 하나씩 빠진다면 이빨이 성한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거짓말이 단죄되지 않으면 거짓말 불감증에 걸리게 된다. 그리고 거짓말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엔 국민들이다.

거짓말은 마침내 지금 4대 '게이트'에서 확대 재생산 됐다. 진승현게이트와 관련, 수뢰의혹이 터지자 신광옥 전 법무차관은 "한푼이라도 받았으면 할복자살 하겠다"고 큰소리 치다가 교도소 담벼락 안쪽으로 떨어졌다. 이용호게이트에서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동생 신승환씨는 이씨로부터 받은 6천666만원이 "월급과 빌린 돈"이라고 오리발을 내밀다가 로비대가성 수뢰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뭐니뭐니해도 이 시대의 거짓말대상(大賞)감은 강민창씨의 "탁, 억"에 이어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다"는, 보물선사업과 관련한 대통령 처조카 되는 분의 국감증언이지 싶다. 국회 국감장에 선 이형택씨의 낯은 참으로 두꺼웠다.

기실 '하늘을 우러러…'란 말은 맹자의 교육편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하니…'에 나오는 말로, 군자의 세가지 즐거움중 두번째 즐거움(二樂)을 일컫는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고, 몸을 굽어 모든이에게 거리낄 것 없는' 처신, 즉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仰不愧於天 俯不 於人)이 그것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뇌물을 먹고 국가기관을 하인부리듯 농락한 그의 입에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가 튀어나오다니 맹자께서 들으면 졸도하실 일이다.

◈국민이 최대의 피해자

이기호 청와대 전 경제수석까지 거짓말이 들통난 지난 25일 김대중 대통령은 부패방지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한마디 했다. 오늘은 부패척결의 역사적인 날이라고. 코미디라면 날짜를 잘못 잡은 코미디였다. 그리고 거짓말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JP는 얼마전 "검찰총장(신승남) 탄핵은 처음부터 생각한 적 없다"고 거짓말했다.

신 전 총장이 동생때문에 낙마할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이인제씨는 지난 대선때의 경선불복은 이회창후보의 인기 추락탓이라며 경선승복 약속이 거짓말이 된 사유를 설명했다.

말같잖은 변명이다.정치권을 중심으로 빚어지고 있는 거짓말 대행진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 정도가 우리의 복이요 팔자"라며 자조하고 있다. 이같은 패배감.운명론은 결국 이 사회에 공범(共犯)의 확산만을 낳는다.

도둑질도 '들키면 할 수 없고', 거짓말도 '들키면 할 수 없고', 온갖 위반도 '들키면 할 수 없고' 식이다. 분위기가 이판이면 올 지방선거.대통령선거도 날샌 것 아닌가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비방과 욕설과 거짓과 부정이 날아다닐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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