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시골 간이역연착하는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철길 건너 들판이라도 볼까 해서

발돋움을 하는데

가지런히 잘라놓은 전나무 울타리

너무 높아

잘 보이지 않는다

무슨 자갈밭이었던가

마침 울타리의 한 구석 잘 자라지 못한 전나무들이 있어

움푹 들어간 사이로 들판을 본다

들판이 멀리 가까이 펼쳐져 있고

엷게 낀 아침 안개 속에

마을의 집들이 흐릿하다

참 사는 게 별게 아니어서

이 작은 풍경들로 가득해지기도 하는 것을

나는 혹시 혼자 그득해지고자

키 큰 전나무 울타리처럼

남의 시선이나 가리고 살았던 건 아닌지

때로는 키 작은 나무들의 한 생애가

훨씬 커 보일 때가 있다

-김진경 '키 작은 나무'

'객주'로 잘 알려진 소설가 김주영은 자신이 소설 쓰는 행위를 반성문 쓰는 일에 비유했다. 문학의 자기성찰 기능을 주장한 것이다. 좋은 문학은 기본적으로 자기성찰에 연결되어 있다.

이 시가 그렇다. 시골 간이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겪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키 작은 나무에서, 시인은 자신을 되돌아본다.'이 작은 풍경들로 가득해지는' 시인은 정말 얼마나 넉넉한 인간인가.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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