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서구 비산동에서만 22년째 내과를 운영해 오고 있는 의사 최영인(60)씨. 그의 병원(최내과)엔 유난히 의료보호환자가 많다. 그중엔 정부에서 인정한 진짜 의료보호환자도 있고 자칭 의료보호환자도 있다.
"나 돈 없어, 달아둬". "천 원밖에 없는데…좀 깎아주어". 노인 환자들이 떼쓰는 광경을 최 내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첫 출근한 간호사라면 '동네 대폿집도 아니고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말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기 일쑤지만 선배 간호사들은 그냥 웃을 뿐이다.이 엄청난 비리(?)를 만천하에 알리겠노라며 원장님께 쪼르르 달려가 보지만 "그만 됐다"는 난데없는 말을 들을 뿐이다.
한사코 취재를 거부하던 최영인 원장. 예순의 나이에 어디 그런 미소를 숨겨두었을까 싶을 만큼 그는 수줍은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최 원장은 기어코 찾아온 취재진에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서울손님을 맞이한 촌아낙처럼 연방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왠지 권위적일 것 같은 의사특유의 인상이 그에게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진료비를 깎아 주느냐는 물음에 그는 "돈이 없다는 데 뭐…"라며 말이 안될 성싶은 이유로 말끝을 흐린다. 사실 그의 병원을 찾는 사람 중에는 가난한 이웃이 많다. 기본 진료비 3천원만 달랑 챙겨왔다가 임상검사를 받고는 "돈이 없는데요"라며 머리를 긁는다.
이쯤 되면 말이 의사이지 동네 어른이기도 한 최 원장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런 에누리나 외상 단골이 꽤 많다는 것이다.
최 내과를 찾는 노인환자들은 아픈 곳 이외에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 시시콜콜한 집안이야기, 자식들의 경제사정, '부산항에 배 들어오면...' 이라는 이야기까지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그런 까닭에 환자 진료 후 최 원장이 써내는 진료기록부에는 처방 외에 '1.0' 이나 '2.0' 혹은 '0'이라는 작은 글씨가 씌어 있다.
간호사들은 아무 것도 씌어있지 않으면 기본 진료비 3천원을 받고 '1.0'이라고 씌어 있으면 1천원을 받고 '2.0'이라고 씌어있으면 2천원을 받는다. '0'이라고 쓰인 환자에게는 한푼도 받지 않는다.
수많은 손님들을 맞이하고 보내느라 간호사들이 깜빡 실수라도 할라치면 대번에 원장실에서 종소리가 '땡'하고 들린다. 최 원장의 호출 명령. 원장실로 들어선 간호사들은 "돈 내드려라"는 말을 듣기 일쑤다.
"참 귀가 밝은 분이세요. 저희가 2천원을 받는지 3천원을 받는지 흘려듣는 법이 없어요". 명의 허준보다도, 슈바이처보다도 우리 원장님이 훌륭하다는 한 직원의 푸념 섞인 자랑이었다. 지갑 속에 돈이 든 걸 분명히 봤는데도 깎아달라는 환자가 있어 간호사들이 가끔 짜증을 내면 최 원장은 "됐다, 오죽하면 그렇겠냐"라며 손해보는 마무리를 지어 버린다.
간호사들의 말대로 최 원장은 확실히 개업의에게 필수적인 '기업가 정신'이 결여돼 있다. 그러나 그는 환자의 몸뚱이 환부 외에 진짜 아픈 곳을 어루만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조두진기자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