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 전북 무주에서 열린 제29회 '전 한국 권투 신인왕대회' 웰터급 결승전. 38세 노장 선수와 24세 젊은 선수가 맞붙었다.
나이를 어쩔 수 없는 듯 노장 선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링 아래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노장 선수의 투혼을 바라보는 여인이 있었다. 노장복서 정경석씨의 아내 김명호씨.
중국집 자장면 배달부 출신 복서 정경석씨.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며 경북 경산시에서 자장면집을 운영한다. 전라북도의 한 산골마을이 고향인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직후 챔피언의 꿈을 안고 친구와 함께 서울로 떠났다.
정씨는 복싱 챔피언이 되고 싶었고, 친구는 육상선수가 되고 싶었다. 가난한 농사꾼보다 훨씬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고,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울역에 내린 정씨와 고향친구의 서울생활은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15일이 지나자 함께 고향을 떠났던 친구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배고픔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남은 정씨가 처음 얻은 일자리는 신문배달. 꼬박 1년을 달리고 또 달렸다. 서울 상도동의 골목길은 지금도 훤하다. 신문배달을 하고 난 후엔 체육관을 찾아 연습했다.
그러나 너무 배가 고팠다. 신문배달로 받은 월급은 한창 자랄 나이인 그에게 배고픔조차 해결해주지 못했다. 백화점에서 반품하기 위해 내놓은 퍼렇게 곰팡이 핀 빵을 훔쳐먹기도 했다.
굶주린 배를 채우는데는 중국집 배달부가 제격이었다. 낮에는 자장면 배달, 밤에는 복싱연습. 탕수육을 배달하는 날엔 한 두 개씩 빼먹으며 배를 채웠다. 그러나 중국집은 밤늦도록 배달 주문이 끊어지지 않았고 권투의 꿈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주방 설거지, 보조웨이터, 웨이터, 지배인을 거쳐 지난 97년 경산에서 작지만 자기 식당을 차릴 수 있었다.
그가 복싱 글러브를 다시 낀 것은 1996년. 이듬해 경북 신인 선수권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98년과 99년 도민체전에 경산시 대표로 참가했다. 그토록 소망하던 복싱을 다시 시작했지만 34세가 되자 나이 제한에 걸려 도민체전 참가가 금지됐다.
프로권투 신인왕전 출전기회도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IMF로 대회가 열리지 못했거나 나이제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씨는 복싱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일까. 우여곡절 끝에 작년 8월 프로데뷔전을 가졌다. 그 해 12월엔 또 하나의 낭보가 그를 찾았다. 2002 전 한국 권투 신인왕 대회엔 나이제한이 없다는 소식이었다.
웰터급으로 출전한 정씨는 첫 게임을 KO승, 두 번째와 세 번째 게임은 먼저 다운을 당한 후 판정으로 이겼다. 4라운드 경기에서 먼저 다운을 당하고 판정승하기란 기적에 가깝다고 복싱전문가들은 말한다.
결승전에서 그는 자신보다 열 네 살 어린 선수를 맞아 1대2 판정패했다. 더 이상 아쉬움도 억울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링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이미 챔피언이었다. 38세의 나이에 신인왕전 결승에 오른 예는 한국 복싱신인왕전 역사상 처음이었다고 한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 세상을 아는 그가 링에 오르는 이유는 더 이상 상대를 꺾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의 투쟁 상대는 자신이다.
"복싱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합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든 부지런한 사람은 챔피언입니다". 그에게 복싱은 '사각의 인생 링'에서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는 스파링 파트너에 다름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농사일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학력이 전부인 누나가 서울서 파출부(당시에는 식모) 생활로 사보낸 소를 노름으로 날리기도 했다. 그런 남편을 받들고 13남매를 키운 어머니는 늘 '부지런해라. 성실해라. 술 담배는 하지 마라'고 신신당부했다.
정씨는 어머니 말씀을 받들어 술.담배를 하지 않는다. 규칙적인 생활과 달리기로 몸을 단련한다. 그를 지도한 경산체육관 관장은 두달만 몸을 가꾸면 언제라도 시합에 나갈 수 있을 만큼 자기관리가 투철한 사람이라고 덧붙인다.
정씨는 성실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신 어머니에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노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땀에 절은 그의 운동복과 손에 감는 붕대를 매일 빨아주었다. 소년기와 청년기를 지나 장년에 이르기까지 복서의 꿈을 간직해온 정경석씨, 그는 이제 세상을 향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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