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테마별 접근-혈액

피는 참 부지런하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며 우리 몸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적혈구는 우리 몸의 기본적인 에너지 원인 산소와 영양분을 세포에 공급하고, 백혈구는 우리 몸에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나 세균을 물리치는 방어역할을 한다.

혈소판은 인체가 손상되어 출혈이 있을 때 응고시켜 혈액이 몸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는다. 또 이산화탄소와 기타 불필요한 물질을 폐와 신장 등으로 실어 날라 몸밖으로 내보낸다. 잠깐이라도 피가 통하지 않으면 조직은 기능을 상실하거나 죽게 된다.

◇나쁜 피는 뽑아내야 한다?

혈액은 심장에서 동맥으로, 동맥에서 정맥으로, 다시 심장으로 되돌아간다. 돌고 도는 혈액을 좋은 피와 나쁜 피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를 뽑아 내는 것과 병을 치료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민간요법에서 체했을 때 손가락에서 나쁜 피를 뽑아 내거나, 근육통 등이 있을 때 어혈을 뽑아낸다고 하지만 의학적으로는 근거가 없다.

물론 현대 의학에서도 치료 목적으로 피를 뽑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혈액 성분 중에 병을 일으키는 병적인 물질이 있는 경우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 피를 뽑는다. 이때는 전체 혈액을 뽑아내고 정상적인 피로 바꿔 넣는다. 또 신장기능이 저하돼 혈액양이 많아 호흡 불량 등이 있으면 혈액 양을 감소시키기 위해 피를 뽑아 내기도 한다.

◇피를 마시면 몸에 좋은가?

과거 먹고 살기 힘들고 영양 섭취가 부족했을 때 녹용 등 혈액 성분이 들어간 음식은 체력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피를 마시면 철분 등 여러가지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먹을 것이 풍부한 요즘에는 혈액 성분을 섭취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에이즈 매독 간염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 혈액으로 병이 전파될 수 있다. '몸에 좋다'며 야생 동물의 피를 마시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더욱 위험하다. 동물의 혈액에는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시킬 수 있는 감염원과 기생충이 있을 수 있다. 에이즈가 아프리카 원숭이에게서 유래된 것만 봐도 동물의 피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의 피를 받으면 회춘한다'는 믿음도 터무니 없는 것이다. 수혈로 인한 부작용은 치명적일 수 있다. 그래서 의사들은 환자의 생명유지와 치료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수혈은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적혈구 모양으로 건강상태를 알 수 있다?

최근 적혈구의 모양과 상태를 진단하는 '생혈구분석기'가 일부 한의원에 보급돼 진단에 이용되고 있다. 대체의학 장비의 하나로 개발된 생혈구 분석기는 고배율의 특수 현미경으로 살아 움직이는 적혈구의 모양을 진단한다고 한다.

생혈구 분석기로 보면 건강한 사람의 혈구는 도넛모양으로 크기가 일정하며 서로 떨어져 있으나, 어혈 등이 있으면 혈구가 서로 붙어 있거나 혈구 테두리 모양이 훼손돼 있거나 크기가 들쭉날쭉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의학에서는 생혈구분석기의 진단을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여러가지 질환에서 혈구의 모양이 변하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이 형태의 변화로만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혈액을 전공하는 임상병리 전문의가 실시하는 여러 검사와 방사선 검사등 다른 검사를 해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 혈구의 모양을 보고 건강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면 혈액검사 소변검사 방사선검사 등 현대 의학의 갖가지 검사법은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글.이종균기자 healthcare@imaeil.com

도움말:전동석교수(계명대 동산병원 임상병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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