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8월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 인터뷰에서 "한국민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그 뒤를 따라 갈 것"이라고 했다.
군부의 전두환 장군을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냐며 국민의 반감이 거세지자 그는 부연 설명을 했다. 그가 말한 들쥐는 북유럽산 레밍(lemming)으로, 레밍은 이동할 때 물에 빠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선두를 그대로 따라가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언론은 일제히 이를 '망언'이라고 규정했으나 한 마리가 뛰면 나머지는 덮어놓고 뒤따라가는 들쥐 습성을 우리 국민성에 비유한 그의 수사(修辭)에 정곡을 찔려 내심 부끄러움도 많이 느꼈을 것이다.
한국인의 들쥐 콤플렉스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번에는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 그것도 재계 대표자의 입에서 똑같은 단어가 튀어나온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12일 한 강연회에서 "어느 사업이 좋다는 소리만 나면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들쥐떼처럼 한꺼번에 뛰어들어 망했느냐"고 반문하고 "기업은 충분한 검토없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시장을 어지럽히는 관행에서 시급히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은 첨단병(病)을 앓고 있다"면서 "누구나 첨단기술을 좋아하지만 진정한 첨단기술은 굴뚝기업과 합쳐져야 의미가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업계의 냄비기질을 질타했다.
사실 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최대 적(敵)은 바로 한국계 기업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명성을 날리던 한국의 가발산업도 한국인들끼리의 과당경쟁으로 결국은 주도권을 잃고 말았다.
특히 초기에 중국에 진출한 기업은 동업종 간 치열한 경쟁으로 현지 근로자 임금만 잔뜩 올려 놓는 바람에 결국 채산성 악화로 공멸하지 않았던가. 정체성(正體性)이 없으면 개인이나 기업이나 종착역은 대체로 이렇게 끝난다.
세계화는 개성화를 의미한다. 남의 아이디어와 힘들여 개척해 놓은 분야에 무임승차하는 것은 정당한 경쟁이 아니다. 슘페터의 지적대로 기업인은 모름지기 '창조적 파괴'를 일삼는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생산성 향상의 지름길이다. 사고와 행동에서 가장 창의적이어야 할 업계에 아직도 '거름지고 장에 가는' 들쥐떼 근성이 깊이 배어있다는 것은 패거리 정치판과 무엇이 다른가.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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