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대구 체르또학원 원장 손기범씨

아파트 밀집지역인 수성구 지산동에는 두가지가 많다. 하나는 병원이고, 또 하나는 학원이다. 길가 빌딩마다 병원과 학원이 다닥다닥 붙어 마치 길 잘못 든 이방인에게 시위하는 것만 같다.

지산2동 협화맨션 뒤편 언덕받이에 자리잡은 체르또학원도 지산동의 많은 학원 중 하나다. 학원이름이 특이하다. 신뢰와 믿음, 확신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다. 학원이름만큼 이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손기범(44) 원장은 개성이 강한 사람이다. 다변(多辯)이지만 그의 말에는 묘한 열정이 묻어난다.

그가 시내 중심가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다 이곳 지산동으로 옮겨온 것은 1994년. 당시만해도 주변에 학원이 거의 없고, 교통도 불편해 학부모들의 불만이 대단했다. 학원버스마저 운행하지 않아 자연 불만이 높을 수 밖에.

그러나 손원장은 학부모들을 설득했다. 제대로 된 교육 한번 해보자고. 아이들에게 맑은 공기가 중요하다고. 상황을 늘 부정적으로만 보지말고 아이들을 바래다주면서 진지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으냐고….

아이들과 학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손원장은 좋은 교육프로그램 개발에 골몰했다. 영어, 수학이 판을 치는 상황에서 오히려 우수한 사회과목 교사들을 불러 모았다. 강의료도 교사 스스로 결정하도록 배려했다. 시간당 대학강의료가 1만5000~1만8000원 하던 시절, 그는 과감히 3만5000원으로 결정했다.

초빙교사들이 오히려 걱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손원장은 서로간의 믿음이 교육을 바로 세우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지산동으로 오면서 2년동안 오로지 투자하기로 작정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배울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비록 어려움에 처했지만 손원장의 믿음은 확고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만 한다면 결과는 언젠가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믿었다.

그는 암기식 교육을 철저히 배격한다. 대안은 사고력 위주의 교육.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식의 강의를 진행했다. 사회와 과학영역의 강의에 비중을 높였다. 상위권 학생들이 하나둘씩 학원을 찾아오면서 그의 사고력 위주의 교육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개념과 원리를 철저히 이해하도록 하는 공부, 풍부한 독서를 통해 포괄적 지식을 습득케 하는 공부를 그는 지향했다. 그 결과 체르또에서 배운 아이들 100명이나 서울대에 진학했다. 손원장 자신도 매달 5권의 책을 읽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의식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육마인드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유학시절 피부로 절감했어요.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교육시스템과 세계로 열린 교육을 위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영문학과 외교안보학을 전공한 손원장은 군사정권시절 대학을 다녔다. 그 시절 학생운동에 적극 앞장섰던 그는 무정부주의에 경도됐다. 과연 삶과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늘 고민하던 그에게 생각의 변화는 그를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과감히 현실을 떨쳐버리고 1985년 호주로 떠났다. 이 사회에 뭔가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에서다. 귀국후 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

우리 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초중고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대학 일변도의 투자로 인해 대학들이 자생력을 잃고 경쟁에서 뒤쳐지고 있다는 말이다. 기초교육을 특화시키고 고급화시키고 전문화시켜야 한국이 살 수 있다고 힘줘 말한다. 획일적 사고를 낳는 현재 교육시스템은 이기적인 인간만 만들어낸다고 걱정하는 그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교육 즉 '시근 교육'을 강조했다.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아이들과 씨름하는 그에게 꿈이 하나 있다. 체르또 효(孝) 고등학교를 설립하는 꿈이다. 우리 전통교육사상을 21세기 정보화시대에 접목시키는 신개념의 교육시스템을 꿈꾸고 있다. 상대를 존중하는 겸손.친목의 정(情)이야말로 세계로 열린 교육에 필수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1%의 희망이 99%의 절망도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땀이 흐르는 삶의 모습과 따뜻한 사람들의 메아리가 넘치는 사회를 꿈꾸는 그는 10여년 동안 JC활동을 해오면서 JC강령을 늘 가슴에 간직하며 산다. 'We believe that service to humanity is the best work of life(인류에 봉사하는 것이 삶의 최선임을 우리는 믿는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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