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고상하지 않다 못해 시시껍적하게 치부된 '대중가요'. 하긴 풀어보면 대중적으로 불려지는 노래라는 뜻인바에야 가요를 통해 시대정신을 얘기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다. 트로트, 포크, 록, 랩, 발라드, 댄스음악…. 우리는 어떤 심정으로 그 시절, 그 노래에 열광했을까.
자칭 '1세대 노래평론가' '대중가요 마니아' 이영미(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연구원)씨가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황금가지 펴냄)를 새로 펴냈다.저자는 "한국의 대중가요가 엄청나게 세련되고 우아한 노래는 아니며, 록 마니아, 재즈 마니아 같은 품격(?)있는 팬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하지만 "대중적이기 때문에, 당시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좋아했고, 그 시절의 젊은이들이 느끼고 좋아했던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으로 저술동기를 대신하고 있다.저자는 '흥남부두···'에서 대중가요의 가사를 중심으로 문학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대중가요의 양식에 따라 사회심리와 서민의 취향이 어떻게 반영됐는지를 얘기해보자는 것이다.
일제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시대별로 대중가요사를 분석한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돼 있다. 처음엔 신세대의 고급 예술이었던 트로트가 1960년대에 이르면서 그 양식이 촌스러워진 이유, 가요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면서 금지곡과 건전가요가 등장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요즘 신세대들의 뜻을 알 수 없는 영어와 랩과 욕들이 난무한 가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도 이 시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제 할말을 노래로 나타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한다.
'굳세어라 금순아' '단장의 미아리 고개' 등 전후 50년대 가요들은 피난살이와 전쟁의 상처를 노래했다. 60년대는 이미자 음반이 10만장 넘게 팔리며 문화적으로 급성장한 시대,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김추자의 관능적인 춤으로 대표되는 70년대 청년문화가 기성세대에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증언한다.
80년대 세련된 발라드의 화려한 슈퍼스타가 지나가고, 90년대 들어 마침내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걸출한 그룹이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며 기존질서를 거부하게 된다.
글 곳곳에 저자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담이 넘쳐난다. '사의 찬미'를 부른 한국 최초 소프라노 가수인 윤심덕의 노래는 실제 정확한 음감조차 없이 서투른 '할머니 찬송가'로 평한다.
우리 트로트가 곧잘 왜색시비에 휘말리고는 했지만 저자는 미국 의존성 문제에 비추어 반박한다. 아싸 호랑나비의 '아싸'는 안되고, '오예'에 대해서는 관대한 우리 대중문화의 강대국 의존성을 꼬집는다.
저자는 글 말미에서 '슬픈 영혼식' '아시나요' 등 최근의 발라드가 죽음이라는 초강력 소재로 사람들의 마음을 빨아들인다고 한다. 도가 지나친 극적상황(짝사랑의 고백이 죽어가는 마지막 유언이라는 식)이 뮤직비디오와 짝을 이뤄 눈물샘을 쥐어짜는 것이다.
현실감이 없는 설정 속에서 순수한 사랑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 21세기의 각박한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므로 순수한 사랑, 영원한 사랑을 가상적 공간의 사별체험앞에서 느껴보려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시대 발라드의 순수한 사랑은 뒷맛이 쓰다'고 한 걸까. 영화속의 아름다운 장면처럼 만들어질수록 그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이기에.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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