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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노무현 애증의 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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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빙의 대결을 벌이며 색깔론과 정계개편 공방으로 격하게 대립하고 있는 노무현,이인제 두 후보간의 관계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간의 애증관계를 떠올리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지난 88년 13대 총선 당시 각각 김광일 변호사와 김덕룡 의원의 천거로 YS의 공천을 받아 정계에 입문했다. 두 사람은 농촌에서 태어나서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서른살이 넘어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이라든지 공교롭게도 둘다 대전지법에서 2년정도 판사생활을 하고 변호사 개업을 한 것 등에서 비슷했다.두 사람이 두각을 보인 것도 5공청문회와 광주청문회였다.

노 후보는 5공 청문회를 통해 이름을 높였고 이 후보 역시 광주청문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이 후보는89년 당시 통일민주당 대변인으로 발탁되면서 YS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이런 과정에서 이미 두 사람의 대립을 예고되어 있었던 것 같다.

노사갈등이 극심했던 당시 두사람은 같은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같은 노동위에 소속돼 있었다. 당시 노동위의 평민당 간사였던 이해찬 의원은 "복수노조 허용을 둘러싸고 노 후보는 평민당의 입장에 동조했으나 이 후보는 반대했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당시 노 후보 등 야당소속 노동위원들이 함께 현대중공업 등 파업현장을 찾아다니며 노사양측간의 중재에 나섰으나 이 후보는 동참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이 후보가 제기하는 '색깔론'은 사실상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90년 3당합당이 이뤄지면서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 후보는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합당대열에 합류했지만 노 후보는 합당에 반대하고 이후 92년 대선직전 통합민주당 대변인을 지냈지만 14대총선에서 낙선했다.이 후보는 김 전 대통령 집권시절 노동부장관과 민선 경기도지사 등을 지내며 승승장구했고 일약 대선출마의 길을 걷게 됐다.

노 후보는 김대중 대통령이 정계복귀를 위해 국민회의를 창당하자 DJ와 갈라섰다가 97년 대선 직전 국민회의에 입당했다.노 후보는 2000년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내면서 뒤늦게 경력관리에 나섰다.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은 상대방을 너무 잘 알고 있는 탓에 유독 서로에 대해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고 지적하고 있다.

경선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대세론'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던 이 후보는 광주경선이후 '노풍'이 강하게 불면서 노 후보와 사생결단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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