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石窟庵 모형 건립하되 신중하게

경주 불국사가 추진 중인 실물 크기의 석굴암 모형 등 유물 전시관 건립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란이 거듭되는 가운데 문화재 위원들 사이에도 다툼이 일어나고, 문화재청이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보기에 딱하다.

세계적으로 자랑할만 한 석굴암은 국보 제24호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금은 유리 보호막이 설치돼 있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숭엄미 넘치는 본존불과 사천왕상 등의 부조를 볼 수 없다. 이런 이유와 관광 수입 차원에서도 모형 전시관을 짓겠다는 기본 구상은 찬성할만 하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환경단체들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렇듯이 석굴암의 남동쪽 104m 떨어진 지점에 120평 규모의 한옥 건물을 지을 경우 경관과 자연환경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아무리 복제를 잘 한다 해도 석굴암의 깊은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을 살리기 어렵고, 진품의 이미지를 되레 왜곡할 수 있다는 비판도 새겨봐야 할 문제다.

이 같이 신중하게 다뤄야 할 사안을 두고 문화재청이 행정의 난맥상을 보인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 제1분과(건조물 담당)에만 심의를 맡겨 승인하자 다른 분과의 문화재위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23개 관련 학회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모임 등도 건립 철회를 촉구하는 양상으로 번졌다. 게다가 12일 의견 수렴을 위해 마련한 현장 설명회에 제1분과 위원들이 불참함으로써 이 기회마저 무산돼 버린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모형 전시관 건립은 자연경관, 석굴암과 불국사의 관계, 전시관이 놓일 자리와 미학적 가치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할 사안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문화재 위원들의 종합적인 심의와 판단을 거친다면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관람객의 편의와 관광 수입, 역사교육을 위해 추진되는 이 모형 전시관 건립이 과연 환경을 해치는지,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지, 나아가 유물관조차 세울 수 없는 것인지, 다각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하는 수순을 밟는 게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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