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이공계 살리기

기술인력을 우대하는 나라는 미래에 청신호가 켜져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프랑스의 국가 엘리트 양성 코스인 '그랑제콜 학교' 170여개 가운데 80% 정도가 이공계 학교라 한다.

이들 학교 졸업생들은 100% 취직이 보장되며, 수재들만 모인다는 '에콜 폴리테크니크' 학생들의 경우 해마다 혁명 기념일의 개선문 군사 퍼레이드 때 군 대표와 사관생도들의 선두에서 행진을 하기도 한다. 나폴레옹 시대부터 기술계 장교들을 우대하던 전통에 그 뿌리가 있다지만, 이 나라가 기술인력을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말해 준다.

▲우리나라에서는 날이 갈수록 이공계 대학 기피와 이탈 현상이 가속화돼 국가 생존 기반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치닫는다는 우려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구 인력은 수입해야 할 처지이며, 의대와 한의대로 옮기려는 이공계 학생들의 행렬이 길어져만 가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공계의 위기가 계속될 경우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도 우려한다.

▲이공계 대학 진학 기피와 이론 중심의 공학교육 극복에 재계가 나선다고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한국산업기술재단과 공동으로 산업계의 전문인력 육성을 위한 '최고경영자(CEO) 공학 교육 지원단' 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기업의 전·현직 CEO와 CTO(최고기술경영자) 100여명으로 구성된 지원단이 오는 가을 학기부터 대학 강의에 들어갈 움직임이다. 이 강의를 원하는 20여 대학을 모집 중인 전경련은 소요 경비도 산업기술재단과 공동으로 부담하게 된다.

▲전경련은 올해 봄학기부터 서울대 공대를 시범 운영, CEO들이 생생한 경험과 지식을 전수하는 강의로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 대졸 실업의 주요 원인이 부실한 대학 교육과 이공계 졸업자의 감소에 있다는 데 착안한 '새 길 트기'인 셈이지만, '기업에서 정보기술(IT) 교육을 1년만 시키면 대학 4년 교육 이상의 효과를 거둔다'는 지적은 무엇을 말하는가. 대학들은 영진전문대학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주문식 교육'해 큰 성과를 거둔다는 사실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지구촌은 지금 과학기술의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스'는 우리의 이공계 위기 원인을 '힘들고 어려운 일을 기피하며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 변화와 외환 위기 이후 연구원들의 대량 실직 사태'에서 찾은 바 있듯이, 우리의 과학·기술자 천시 풍조와 사회적 보장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재계가 이공계 지원에 나섰으나 우리의 가치관 변화와 젊은 세대들을 끌어들이고 우대하는 과학기술 정책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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