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기능 못 살리는 대구시내 중.고교

굳게 닫힌 문, 그나마 열려도 낡은 책만 가득해 읽을 만한 걸 찾기 힘든 곳. 학교 도서관이 좀체로 살아날 줄 모르고 있다.

도서관 담당 교사가 바뀌거나 도서반 학생들이 새롭게 구성되면서 의욕을 내는 학교도 더러 있지만 도서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조차 공유되지 않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 되고 만다. 학교의 심장이자 창의력 조성의 핵심인 도서관이 왜 제 기능을 못하는지, 활성화할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먼 도서관 낡은 책=우선 위치부터 문제. 많은 학교들이 도서관은 조용한 곳에 있어야 한다며 건물의 한쪽 끝에 만든다. 지하에 만들어 둔 학교도 있다. 기껏 중앙에 있던 도서관을 구석으로 밀어내는 학교도 있다.

이는 도서관을 그저 자율학습의 공간 정도로 보는 데서 비롯된 인식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이용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어디서든 접근이 가까운 건물의 중간 부분에 도서관을 설치해야 한다고 교사들은 지적했다.

장서 대부분이 폐기 직전의 헌책이라는 사실은 어렵사리 도서관을 찾아온 학생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다. 새로 구입하는 책은 적은데 낡은 책은 폐기시키지 않는데 따른 현상이다.

연간 도서 구입비가 500만원을 넘는 학교는 손에 꼽을 정도. 올해는 대구시 교육청에서 도서 구입비로 고교 300만원, 중학교 200만원 등을 지원했지만 학교 운영비의 1~2% 정도만 보태는 현실에서 학생들의 요구에 맞는 책들을 충분히 구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외견상 도서관 장서 숫자는 적잖다. 1만권이 넘는 학교도 많다. 그러나 마음먹고 정리하면 볼 만한 건 1천권도 안 되는 곳이 많다. 학교에 들어오는 이런저런 책은 볼 시기가 지나면 학생들에게 소용이 없어도 도서관으로 보내진다. 하지만 폐기는 연간 5% 이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숫자만 불어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전산화는 요원한 일이다. 성화여고 박홍진 교사는 "읽을 만한 책을 전산화하는 것도 학교 형편에서는 너무 방대해 엄두를 내지 못하는 학교가 많다"면서 "학생들이 필요한 책을 검색해서 쉽게 찾을 수 없는 것도 도서관을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했다.

▲사서 교사 확보가 관건=도서관이 이처럼 방치되는 데는 전담 교사가 없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대구의 경우 초.중.고 통틀어 사서 교사는 단 1명. 그나마 경북은 올해 사서 교사 22명을 뽑아 시.군별로 1명씩 배치했다.

사서 교사가 없는 학교에서는 국어나 한문 교사가 보통 맡게 되지만 이들에게 책임 있는 관리를 요구하기는 불가능하다. 대부분 학교들이 도서관 업무를 잡무 쯤으로 여기고 지원은 거의 않기 때문이다.

한 도서관 담당 교사는 "도서관이 그럭저럭 돌아가게 하려면 비품도 바꿔야 하고 도서반 학생들에게 간식이라도 챙겨줘야 하는데 운영비조차 책정해주지 않는 학교가 많다"며 "자기 주머니 털어가며 해야 하는 일이 잘 될리 있겠느냐"고 했다.

공립학교의 경우 전보 때문에 담당 교사가 수시로 바뀌다 보니 도서관 활성화가 더욱 어렵다. 한 두 교사가 애써 도서관을 꾸미고 학생들을 끌어들인다고 해도 후임자가 별달리 애정을 갖지 않으면 금새 흉가처럼 변하고 마는 것이다.

대구시 교육청 이의로 장학사는 "사서 교사를 확보하면 도서관 활성화, 독서 교육 등 나머지 문제는 저절로 풀릴 것으로 보지만 현실적으로 선발이 쉽지 않다"면서 "올해 초.중등 각 2명씩 뽑자고 건의한 상태"라고 했다.

▲인식 전환이 급선무=도서관 담당 교사들의 모임인 학교도서관 연구회 교사들은 대구의 경우 중.고교 단위에서 그런대로 도서관이 운영되는 곳은 20개 정도라고 꼽았다. 이들 학교를 들여다보면 우선 적극적인 담당 교사가 눈에 띈다. 여기에 교장, 교감 등 간부들의 지원이 따라야 하고 도서반 학생들의 열성도 필요해 보였다.

연구회 한 교사는 "의욕을 갖고 예산을 신청하거나 학생들을 모아 활동해 보려는 교사가 있으면 골치 아프다며 아예 교체해 버리는 풍토가 여전한 상황에서 학교 도서관 활성화를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했다. 또다른 교사는 "식사 시간, 쉬는 시간에 도서관 문을 열어놓으면 수업이나 자율학습에 방해가 된다고 하는 교장도 있다"며 도서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도서관 활성화라고 하면 전산화가 모두인 것처럼 여기는 것도 문제. 새 책을 구입하거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데는 인색하면서 e북이나 멀티자료를 들여놓는 데 적극성을 보이는 전시행정으로는 도서관 활성화가 요원하다. 사서 교사가 없고, 담당 교사도 적극성을 갖기 힘든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 진행되는 도서관 디지털화는 예산 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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