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1907년 추상미술의 기념비적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을 공개했을 당시의 에피소드.
그는 늦여름 작업실 문을 아무에게도 열어주지 않은 채 수백장의 밑그림을 그려가며 무려 6㎡ 크기의 대작을 완성했다. 그림을 완성한 후 친한 동료들에게 그림을 보여주자, 마티스는 '이건 사기'라며 노골적으로 반감을 나타냈고 동시대 큐비즘의 개척자인 브라크조차 '소름끼치게 놀랐다'고 했다.
삼각형 사각형으로 삐죽삐죽 갈라진 벌거벗은 창녀들이 마구 뒤섞여 있는 이 그림은 기존의 미술상식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피카소는 '미술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수천년간 내려온 불문율을 일시에 깨트리면서 창녀들의 추악한 육체를 통해 20세기 초의 냉엄한 사회현실을 화폭에 담은 것이다. 이 걸작은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냉대를 받고 작업실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17년이 지나서야 한 미술애호가에게 팔렸다.
이렇듯 추상미술은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외면 속에서 출발한다. 추상미술이 현대미술의 주류이긴 하지만, 현재도 미국.유럽에서도 미술애호가들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몇년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인상파 화가 작품'을 전시했을 때, 미술관이 관객으로 터져나갈 정도였다는데 추상작품 전시회에 그 정도 관객이 몰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국내에서도 추상미술을 그리는 작가중 십수명을 제외하고는 배고픈 작가가 대부분이고, 구상작품이 위세를 떨치는 대구에서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솔직히 구매자 입장에서 그림을 이해하지도 못하는데 기꺼이 자신의 돈을 내놓을 수 없는 게 아니겠는가.
추상작품으로 인해 자주 벌어지는 해프닝 중 하나. 전시회를 앞두고 펴내는 팸플릿에 작품의 좌우가 뒤바뀌어 게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대구의 한 화랑에서 두께가 얇고 다소 투명한 지(紙)판화의 앞뒤가 뒤바뀌어 실린 적도 있었다. 작가들도 갤러리의 실수에 분개할 것 같지만, 이를 문제삼지 않고 눈감아 준다. 추상미술은 작가의 의도를 표현하는 부분에서 작품의 좌우가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
전문가들도 이럴진대, 일반인들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다. 전문가들은 그림을 감상하는데 여러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어떤 목적으로 그렸는지, 각각의 그림이 전하는 그 시대의 문화에 대해 생각하고, 사실적 표현의 정도를 관찰하고, 형태나 색채를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살펴라".
근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상당수 관객들이 추상작품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점이다. '작품을 이해하는 척해야 하고, 모르면 무식(?)한 사람 취급 받을 것 같고…' 작품을 보면서 즐겨라. 그러면 작가의 의도가 자연스레 읽히고 난해함이나 복잡함도 사라지지 않을까.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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