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바다를 보며

젊은 시절, 끝이 보이지 않게 넓고 푸른 바다는 나에게 어떤 희망을 갖게 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나 공연히 화가 날 때 혹은 가끔씩 좌절을 느낄 때면 난 바다로 달려가 그 바다의 넘실거리는 싱싱함을 바라보곤 했었다.

그 시절엔 그저 바다의 푸르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살다보니 우리들 사는 삶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느끼면서 바다는 분명 희망만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면서도 그 속엔 알 수 없는 무엇, 즉 암초가 곳곳에 박혀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로부터 나는 내 속에 무엇인가를 갖게 되었다. 겉으로 봐선 절대 알 수 없는 속마음 같은 것을 갖게 되었고 의사 표시를 잘 하지 않는 나의 속마음 때문에 "넌 무엇이냐"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내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고 다시 불혹의 나이를 넘어 새로운 천년으로 바뀐 오늘날, 그 세월만큼이나 세상도 많이 변했다.

명품이라는 물건하나에 수십 만원에서 많게는 수백 수천만원까지 하는 시대,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옛말처럼 실제 물건의 가치보다 포장비와 광고비가 더 들어가는 시대,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도저히 분간이 안 되는 정치인들이 저마다 잘났다고 악을 쓰는 시대, 사실 요즘은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혼란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봐도 그렇다. 평론가가 본 영화 '나쁜 남자'가 나쁘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복수는…' 잘했다는 건지 못했다는 건지 분명한 견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두리 뭉실하게 넘어간다.

모든 영화에 대한 평가가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에 화가 나고 납득이 되지 않을 즈음, 나는 다시 바다를 찾았다. 바다는 예전처럼 펄펄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바다를 찬찬히 보았다.

바다 속과 바다 위와 수평선 너머 저 멀리 푸른빛 안개까지도 이제는 마음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다시 희망이라는 걸 생각했다. 이런 혼란의 시대일수록 어떤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것, 그것이 내겐 희망처럼 보였다.

육정학(경북 외국어테크노대 교수.영상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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