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달성 도동서원

봄이 왔는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 길목이다. 아직은 4월. 신록이 푸르름을 더하기까지 나들이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 이럴때 마땅히 갈 곳을 찾기 어렵다면 대구에서 가까운 역사.문화의 현장을 돌아보자. 의외로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역사의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곳이 많다.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낙동강변에 자리잡은 도동서원은 대구서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성서IC에서 39㎞. 부지런만 떨면 언제든 부담없이 찾을 수 있을 만큼 지척이다. 낙동강을 따라가는 길 맛과 다람재 정상에서 보는 강변마을 풍광까지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여기에다 한창 피어나는 보리밭과 넓은 감자밭 사이로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드라이브도 그만이다.

도동서원은 동방5현 중 한 사람인 한훤당 김굉필(1454~1504)을 모신 곳이다. 도산, 병산, 소수, 옥산서원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서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서원 건물과 담장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다. 그러나 역사적인 가치만큼 알려지지 않은 탓일까? 도동서원은 인적이 드물다. 주말에 문화답사 여행객들이 더러 다녀갈 뿐이라고 관리인 한진우(74)씨는 말한다.

도동서원은 원래 현풍 비슬산 기슭에 세운 쌍계서원이었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고 선조 38년(1605) 지금의 자리에 중건됐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대상에서 제외된 전국 47개 중요 서원 중 하나였다.

4월말 기자 일행이 도동서원에 도착하니 먼저 400년 된 은행나무가 반겨준다. 세월의 무게를 지탱하기가 어려웠을까. 은행나무는 아름드리 가지들을 땅에 드리운 채 방문객을 맞는다. 한훤당의 외증손인 한강 정구 선생이 도동서원으로 사액(賜額;임금이 사당이나 서원 등의 이름을 지어 새긴 편액을 내리는 일)된 것을 기념해 심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침입자를 경계하는 참새떼들이 부산한 수월루에 오르니 물굽이치는 낙동강과 고령일대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한눈에 반촌임을 알아보게 한다. 서원 안쪽으론 수월루, 강당, 사당 등 주요건물을 일직선상에 배치하고 그 나머지 공간에 부속건물을 지었다. 위계와 질서가 엄격한 선비정신을 보는 듯 하다.

전체적으로는 토담이 건물들을 에워싸고 있어 고택의 멋을 느끼게 한다. 이 담은 진흙과 큰돌을 몇 줄 쌓아 올리고 황토 한 줄, 암기와 한 줄을 교대로 놓았다가 지붕을 덮었다. 중간중간 수막새를 끼워넣고 지형에 따라 높낮이를 달리해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있다. 토담으로서는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답다.

수월루를 지나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환주문이다. 환주문은 한사람이 겨우 지날 만큼 좁고 높이도 낮다. 갓쓴 유생도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문. 서원의 중심이자 강학이 이루어지던 중정당에 이르는 문은 이처럼 겸양의 마음없이는 들어갈 수조차 없다.

중정당 앞에 서면 400년 세월의 무게가 엄습해온다. 빛이 바랜 기둥이며 마루가 예사롭지 않다. 도동서원이란 나무액자는 두개. 강당안쪽의 흰글씨는 선조의 사액 액자이고 건물 앞쪽에 걸린 액자는 퇴계 이황선생의 친필을 모각한 액판이다.

중정당 양옆의 건물은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중정당 대청마루에 서니 금방이라도 좌우 기숙사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단아하고 흔들림없는 유학자의 모습을 닮은 중정당 건물을 받치고 있는 기단도 특이하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렸는데도 틈 하나없이 끼워맞췄다. 면도칼로 다각형 모양 돌을 오린 듯 정확하다.

중정당 뒤로 돌아가면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 가파른 경사에 5개의 석축을 쌓고 꽃나무를 심었다. 그 사이로 난 계단을 비틀거리며 오른다. 경사가 가파르기도 하거니와 작약꽃 향기에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당은 제향 때가 아니면 공개하지 않는다.

서원 입구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는 유물전시관은 공사중이라 볼 수 없다. 서원 관리인 한씨는 "작년 3월 유물을 몽땅 도둑맞았다가 되찾은 적이 있어 유물을 공개하기가 겁난다"고 이유를 밝힌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400년의 역사 속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우리곁의 문화유산인 도동서원을 찾으면 선비가 돼서 돌아올 수 있다. 달성군 문화공보실 문화재계(053-650-3225), 도동서원 관리사무소(053-617-7620).

▒가는 길

구마고속도로 현풍 IC에서 내려 구지쪽으로 우회전해 1093번 지방도를 따라 700~800m를 가면 대리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안내표지판을 따라 우회전해서 가면 된다. 현풍 IC에서 도동서원까지는 9㎞.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대구 서부정류장에서 버스로 현풍까지 간 뒤 현풍버스정류장에서 도동서원까지 가는 66-1번 시내버스를 탄다.

이 시내버스는 아침 6시50분부터 밤 9시50분까지 하루 7번 왕복 운행한다. 돌아오는 길은 서원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바로 현풍중고등학교 쪽으로 빠진다.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보다 빠를 뿐만 아니라 다람재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강변마을과 도동서원은 한 폭의 그림이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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