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대선은 아무래도 이념이 최대 이슈가 될 것 같다. 과연 이념이 지역의 벽을 넘을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을 남기지만 명분상 존재의의를 상실한 지역주의는 아무래도 그 위세가 예전만 같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여당이 내건 정계개편 명분이 '현재의 지역구도를 이념과 정책정당 구도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태풍이 될지 미풍이 될지 모르지만 최근의 여야 움직임도 대체로 겉으로는 이념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 여당은 과거 민주화 세력을 모은다는 민주대연합으로, 야당은 사실상 보수대연합 격인 국민대통합론으로 나가고 있다. 따라서 그에 걸맞은 정책이 나오고 이념적 배경도 자연스레 나오지 않겠는가. 그리고 정책이 비슷해서는 지역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역주의외에는 선택할 길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의미에서도 이번 선거만은 이념과 정책중심의 선거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책논쟁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보수냐 진보냐, 혹은 좌파냐 우파냐 하는 이념논쟁이 핵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설사 지난 대선 때처럼 비슷한 정책이 나온다 해도 그 바탕에 있는 이념이 다르면 결과도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바른 대통령을 뽑기 위해서도 이념논쟁은 필요한 것이다. 이념 검증도 필요하고 또 이념을 통한 경쟁이 있어야 국민은 보다 나은 미래를 시행착오 없이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념논쟁 불요(不要)론도 있지만.
---진보세력의 비중
물론 이념논쟁은 건전한 토론이어야지 여당 경선 때 보여준 것과 같은 스타일 이거나 색깔론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공정한 사회 분위기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점이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많은 지식인들이 걱정하고 있는 만큼 사회적 조건이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우리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구성비가 생각보다는 균형점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가장 낙관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영작씨다.
그 자신이 실시한 올 1월에 여론조사에 의하면 보수는 32.9% 진보는 49.1%라는 것이다. 보수 70%라는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통계이다. 그러므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용공(容共)시비 같은 것도 이번 대선에서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2월 중앙일보가 실시한 조사로도 국민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28.5%, 진보는 21.4%, 중도는 49.5%였다.
그리고 문화일보와 YTN이 공동조사 한 여론조사에는 대선에서 진보성향 후보를 지지하겠다가 71.7%였고 보수성향 후보를 지지하겠다가 17.5%로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좌파의 해방
그럼에도 실제상황에 들어가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국민의 의식은 통계조사와는 달리 좌파=빨갱이라는 냉전적 사고에서 해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념의 스펙트럼이 넓어지지 않는 한 건전한 이념논쟁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EU 15개국 중 13개국이 좌파정권이다 했을 때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다가도 우리 정치서 좌파하면 빨갱이라는 눈으로 본다. 이론적으로, 빨갱이는 극좌만 보고하는 말인데도.
일반적으로 좌파는 사회적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자유보다 평등을 조금 중시하는 정도다. 이 때문인지 정치인 중 자신을 중도 우파라고 하는 사람은 있어도 좌파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끔 교수 중에서 이제 우리도 좌파라고 불러도 좋을 시기가 아닌가 하는 사람은 있지만. 국민인식도 그렇게 바뀔 때가 된 것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의 정치인들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데 있다. 가령 보수 쪽에서는 이념의 분류를 굳이 좌파 우파로 하려 한다. 좌파=빨갱이 이미지를 이용하겠다는 계산이다. 반대로 진보 쪽에서는 굳이 진보 대 보수로 구분하려 한다. 보수라는 말에 스며있는 수구(守舊)의 이미지를 이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건전한 이념논쟁이 있을 수 없다. 서로 상대를 인정하는 데서 대화와 토론도 있고 생산적인 경쟁의 효과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또 지역주의 타파는 도로아미타불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 왜 좌·우가 경쟁해야 하는가. 그것은 영국 블레어 총리가 말한 "(신)우파는 진보를 위해 정의를 포기했고 (구)좌파는 정의를 위해 진보를 포기했다"는 내용 때문이다.
충분히 상호보완적일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보수와 진보가 밧줄처럼 팽팽이 맞서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평범한 진리도 이제는 우리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닐까.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치를 지역주의의 포로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이고 우리의 정치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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