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은 80번째 어린이 날. 하지만 어린이들은 순수한 동심과 해맑은 얼굴을 잃어버렸다. 핵가족이 뿌리 내리면서 부모의 과잉보호에다 황금만능주의, 극도의 이기주의가 어린이들을 지배, 아이들은 '어린이'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인터넷게임은 순수한 동심마저 적개심과 폭력으로 물들이고 있다. '어린이답지 않은 어린이'들의 실태와 동심 되찾기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현기(8·대구시 수성구 욱수동)는 입학 한달만에 친구들에게 '왕따'당했다. 선생님이 쓰는 컴퓨터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아이들과 함께 보는 아동도서를 혼자만 독차지해 친구가 없다.
선생님도 안중에 없다. 학원에 가야 한다며 수업 중에 보채는 일이 다반사고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아도 대충 흘려들을 뿐이다.
담임교사는 "한 반 39명 중 4, 5명이 현기와 비슷한 상태"라며 "수업시간에 교실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정도로 증상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회사원 박모(38·대구시 동구 방촌동)씨는 다가오는 어린이날이 부담스럽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성화에 못이겨 디지털 장난감 로봇을 선물해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
음성인식에 따라 '엎드려' '앉아' 등 간단한 명령을 따라하는 디지털 장난감 로봇의 가격은 무려 128만원.
박씨는 올들어서만 수십개의 장난감을 아들에게 사줘야했다. 버릇을 고치려 시도하다가도 울며 떼를 쓰는 바람에 그때마다 '백기'를 들어야했다.
초등학교 5학년 창훈(12·수성구 만촌동)이는 집에서만큼은 언제나 '왕'이다. 밤 늦도록 인터넷게임에 몰두해도 엄마, 아빠는 그러려니 넘어가고 다음날 등교시간에 맞춰 엄마가 어김없이 잠을 깨워준다. 학교까지 500m에 불과하지만 엄마가 미리 챙겨준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면 아빠가 차로 모셔준다.
대구 종로초등학교 윤태규(53) 교사는 "늦둥이, 독자 가정이 늘어나면서 부모의 과잉보호가 도를 넘고 있다"며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과잉보호는 또 다른 학대"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윤모(35) 주부는 최근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윤씨는 금목걸이, 외제 책가방 등 딸의 액세서리와 학용품을 '최고'로 치장했고 수업이 끝나면 책가방을 받아주고 신발 신는 것까지 일일이 확인한다. 또 수업시간 내내 운동장에서 딸을 기다리며 쉬는 시간마다 딸의 얼굴을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
동산병원 정신과 정철호 교수는 "윤씨 같은 학부모는 아이와 떨어져 있으면 한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이른바 '분리불안장애'의 전형적 케이스"라고 말했다.
대구 종로정신과의원 유보춘 원장은 "극도의 이기주의적 성향을 가진 버릇없는 아이(Spoiled Child)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며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주는 부모들의 과잉보호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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