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은 화가가 만드는가, 아니면 화상(畵商)이 만드는가? 위대한 화가의 뒤에는 항상 유명한 화상이 버티고 있었다. 앙리 마티스(1869~1954), 파블로 피카소(1881~1973) 같은 시대를 앞선 작가들도 기업형 화상들의 사업적 수완에 힘입어 성공할 수 있었다.
화가와 화상의 완벽한 컴비네이션이 걸작을 만드는 조건이지만, 무엇보다 그 시대 상황과 현대인의 정서를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의 힘에 있는게 아니겠는가.
'불우한 화가의 전형'으로 살다간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작품은 그의 사후 어떤 과정을 거쳐 걸작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월스트리트 저널'기자를 지낸 신시아 살츠만은 고흐가 남긴 '가셰박사의 초상(예담 펴냄)'의 소장 경로를 추적, 명화와 돈, 수집가들을 둘러싼 얘기를 번뜩이는 재치로 풀어간다. 저자는 프랑스의 한 농촌 정원에서 시작돼 도쿄 외곽의 한 창고에서 끝나는 작품의 긴 여정 뿐만 아니라, 지난 100년간의 예술, 경제, 정치적 상황을 함께 보여준다.
1990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미술품 가격사상 최고가(8천250만달러.한화 약1천70억원)를 기록한 '가셰박사의 초상'은 그가 권총자살을 하기 몇주 전에 그린 마지막 작품이다.
고흐는 1890년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프랑스 오베르에 머물며 의사 폴 페르디낭 가셰 박사와 자주 만났다. 고흐는 그의 초상화를 그린 후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제작 의도를 설명한다
"과거의 초상화와 비교할 때 너무나 달라진 오늘날의 얼굴에 존재하는 열정과 표정을 드러내고 싶었다. 무엇인가 지독히 갈구하는 얼굴을 그려내고 싶었다. 서글퍼 보이면서도 온화한 얼굴, 격식을 던져버린 자유롭고 지적인 얼굴, 바로 미래의 초상화는 이렇게 그려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듯, 인물 묘사에 충실한 사실적 작품이 아니라, 세기말 사회적 혼돈과 신경쇠약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던 고흐의 자의식이 반영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처음에는 겨우 300프랑(58달러)정도 가격에 거래됐고, 나치 치하에서는 퇴폐 예술품으로 취급받다가 그림을 구해내기 위한 애호가들의 노력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결국 이 작품은 예술가, 화상, 박물관 관장, 나치 엘리트 관료, 유태인 망명객의 손을 거쳐 일본 기업가에게 넘어가 창고에 처박혀 있는 운명에 처한다.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우리 가슴에 여운을 남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오늘날 세계를 짓누르는 긴장감과 일탈감을 해석해낸 그의 독특한 역량 때문일 것이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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