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감독의 힘에 주목하라".이정향 감독의 '집으로…'가 4주째 정상을 지키며 전국 관객 200만명을 돌파했다. 말 못하는 할머니와 당돌한 손자의 유쾌한 동거담을 그린 이 영화는 '조폭'과 '엽기'로 얼룩진 한국영화판을 정화하는, 봄비같은 마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어쩌면 이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관객몰이를 들먹이며 '집으로…'를 다시 얘기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음을 고백하고 싶다.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도 돈이 되는구나'.
'집으로…'의 흥행은 여성감독의 영화도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그간의 소망을 실현시켰다는 점에서 기념비이다. 최근엔 충무로의 새 흥행코드는 여성감독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집으로…'를 시작으로 끄집어 낸 '여성감독의 힘'운운이 돌발적인 것은 아니다. 정재은(33) 감독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성인으로 가는 통로의 막바지에서 혼란스워하는 소녀들의 감수성을 그린 이 영화는 흥행에선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마니아들사이에 "'고양이를 부탁해'를 부탁해"라는 영화보기 운동으까지 불러일으켰다.
밤무대 3류 밴드를 통해 부여잡고 싶은 삶의 소망을 속삭이는 임순례(42)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30대 학원강사와 여고생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이미연 감독의 '버스, 정류장'에서도 약동하는 여성감독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집으로…'의 흥행을 거슬러 보면 지나간 여성감독의 영화들은 여성이란 정체성의 틀 속에서 맴돌기만 한 게 아닌가 싶다. 깨놓고 얘기하자. 도대체 무슨 무슨 '여성영화제류(類)'는 왜 그다지도 심각하고 지루한가 말이다. 모든 여성감독의 영화가 꼭 독립영화여야 할 이유는 없다.
냉정하게 보면 여성 감독들 스스로 '여성'이란 의식이 너무 강했고, 여성이니까 여성감독영화의 주제는 페미니즘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인 것 같다.
다양한 삶의 풍경들을 남성이 보지 못하는 섬세한 감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여성감독의 힘의 정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집으로…'가 보통의 영화흥행에 그칠 수 있다. 적은 제작비를 선호하는 여성감독들의 취향(?)때문에라도 아직은 남성감독 영화가 추구하는 상업성과 견주기엔 시기상조라는 예측이 그럴듯하다.
하지만 임순례 감독의 말.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영화를 만들줄 안다는 것을 한국영화계가 자각하는 것 같다". 여성감독의 힘에 주목할 가치가 충분하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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