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영화-취화선

'취할 醉, 그림 畵, 신선 仙…'.19세기 구한말 천재성과 기행으로 조선화단에 자리매김한 화가 오원(吾園)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임권택 감독의 신작 '취화선'이 10일 스크린을 두드린다.

'취화선'은 지난 2000년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춘향뎐'에 이어 다음달 열리는 칸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한 작품.

영화는 술잔을 연신 입으로 가져가며 여러사람 앞에서 그림을 그리던 장승업(최민식 분)에서 거지들로부터 뭇매를 맞는 소년 장승업을 비추는 회상신으로 시작한다.

고아거지로, 화방의 심부름꾼으로, 남의 집 머슴으로 떠돌던 장승업은 그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본 평생의 후원자 개화파 선비 김교원(안성기 분)과 인연을 맺는다. 역관 이응헌의 집에 맡겨진 그는 한번 본 그림을 그대로 모사하는 재능으로 주위를 놀라게 한다.

타고난 그림실력으로 점점 이름을 떨쳐가지만, 무학에다 천출신분인 그에겐 권위에 찬 사대부들의 '기량은 뛰어나나 품격은 미치지 못한다'는 모멸찬 평만 있을 뿐이다. 궁궐로 불려가 벼슬을 얻지만 타고난 방랑벽으로 붓을 내팽개치고, 자신만의 그림을 찾기 위한 구도의 방황을 반복한다.

취명거사(醉暝居士)란 별호에 걸맞게 술과 기행을 반복하는 그가 여인들과 맺는 로맨스도 아련하다. 치마폭에 그림의 답례로 '梅花一生不賣香(매화는 평생 제 향을 팔지 않는다)'이란 화답을 써준 기생 매향(유호정 분), 이응헌의 여동생인 첫 사랑 소운과의 애절한 만남과 헤어짐이 가슴깊이 아린다.

'취화선'의 가장 큰 매력은 빼어난 영상미. 단풍이 수려한 가을 산과 끝없이 펼쳐진 봄 들판, 달빛을 머금은 개울, 황금물결처럼 넘실대는 억새밭, 눈발 날리는 개펄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먹물이 뚝뚝 떨어질 듯하다. 우리의 산천이 이토록 아름다운가, 스크린에 담긴 풍경이 새록새록 정겹다.

임감독의 전작 '서편제' '춘향뎐'에서 익히 보아왔던 정감이다. 그러나 롱테이크로 유장함을 즐겨하던 그가 오원 개인보다 격동의 역사를 재현하는데 힘을 할애하느라 장면을 잘게 나누고, 속도를 높인 점은 낯설다. 관객들의 호흡이 가쁘다. 또 오원의 주변인물들이 병인박해,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등 격동의 현장마다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는 설정도 지나친 작위감을 줄 만하다.

그러나 이같은 아쉬움은 (최민식의 표현을 빌자면) '살 떨리는' 배우 최민식의 신 내린 듯한 연기와 스크린속에 온전히 되살아난 풍광앞에선 투정쯤이다. 깡패 같은 검사(넘버 3),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살해하는 남편(해피엔드), 북한 간첩(쉬리), 삼류 건달(파이란)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온 최민식. 그의 연기의 내공이 한층 깊어졌단 느낌이다.

하얀 화선지에 하나 둘씩 점과 선이 채워지면서 우아한 한국화가 완성되는 장면들에선 묵향이 배어나올 듯 하다. 관심많은 관객이라면 미리 '취화선' 공식홈페이지(www.chihwaseon.com)를 들러보기를 권하고싶다. 경악하리만치 아름답다. (중앙시네마.아카데미 시네마.시네마M.메가박스 개봉)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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