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86주부 금기란 없어요

김형경의 장편소설 '담배 피우는 여자'는 담배 중독인 한 주부가 남편의 금연요구와 구타를 피해 이웃집으로 도망 다니는 이야기이다. 여자는 남편의 계속되는 구타에도 끝내 담배를 끊지 못하고, 결국 그녀가 담배를 피우던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는다.

'남편이 그토록 싫어하는데 담배를 끊는 것이 어떠냐'는 이웃집 여자의 조언에 담배 피우는 여자는 "남편도 담배도 같이 사랑하고 싶다"고 대답한다. 이 말은 남편은 담배도 아내도 함께 사랑할 수 있는데 여자는 왜 안 되는가 하는 반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담배는 주부 혹은 여자에게 금지돼 있는 우리 사회의 갖가지 권위주의적 제한을 상징한다.

2002년, 우리 사회에는 '담배 피우는 여자', 혹은 '담배를 피우고 싶어하는' 30, 40대 주부들이 많다. 여자친구들끼리 나이트 클럽을 찾아 이성과 즉석 만남을 갖고 하루를 즐기는 주부들이 그중 하나다. 이들 대부분은 동창회, 곗날을 핑계로 은밀히 나이트 클럽을 찾는다. 이들 주부들의 나이트 클럽 출입은 바람이나 일탈, 가정 등한시와는 별 상관이 없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제일입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가정 불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트 클럽에서 만난 41세의 주부는 단순히 하루를 즐겁게, 뒤탈 없이 보낼 뿐이라고 말한다. 주부들은 스스럼없이 낯선 남자들과 나란히 앉아 술을 따르고 마시며 즐긴다. 그리고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혀 미안한 표정 없이 자리를 떠난다.

남자에게 선택 당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표시한다2주일에 한번씩은 나이트 클럽을 찾는다는 30대 후반의 한 남자 직장인은 이곳의 주부들 대부분이 건강한 가정의 주부들이라고 말한다. 동행한 40대 남자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이른바 '춤바람'과는 거리가 멀다고 덧붙인다.

춤에 미친 사람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 중에는 1회용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밤 10시면 귀가한다. 이들은 결코 바람난 아줌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와 더불어 요즘 주부들은 확실히 변했다. 나이트 클럽을 찾는 386세대 주부들에게 낯선 남자와의 부킹은 더 이상 해서는 안될 일이 아니다. 그녀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에게만 부과돼 왔던 금기를 야멸차게 구긴 다음 휴지통에 던져버렸고 스스로 장하다며 박수까지 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심심치 않게 보도되듯 이런 주부들을 노리는 제비족들이 그렇다. 지난해에는 환각제를 몰래 먹이고 성관계를 맺은 후 돈을 뜯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무리 정신을 차려도 운이 나쁘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것이다.

또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나다보면 평소 대수롭지 않았던 남편의 단점이 크게 부각되고 남편이 싫어지기도 한다고 한 30대 여성은 털어놓는다. 게다가 멀쩡한 직장과 가정을 가진 남자들도 제비족과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덧붙인다.

소설처럼 남편들이 아내들에게 '담배(여성에 대한 금기사항)'냐 '죽음이냐' 중 택일을 강요하던 시절은 분명히 갔다. 남편들이 그렇듯 아내들도 '담배'와 '가정'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담배'는 남편들뿐만 아니라 아내들에게도 틀림없이 해롭다. 습관처럼 나이트클럽을 찾는 바람에 많은 것을 잃었다는 한 40대 주부의 솔직한 고백이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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