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경외사상을 변함없이 실천했던 슈바이처 박사는 무더운 여름밤에도 창문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집안으로 들어온 벌레들이 램프 불에 부딪치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안락사론자들은 고통 앞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게 오히려 천부의 권리라고 말하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환자가 요청하더라도 결코 독약을 주지 않겠다'고 생명을 천부의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사회가 의사들에게 고도의 윤리성을 요구하고, 의사 스스로도 다짐하고 실천하는 것도 의술이 인술이기 때문이리라.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진료 중단 문제를 놓고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대한의학회가 지난해 11월 의협이 발표한 의사 윤리 지침 중 임종환자 부문을 최근 구체화해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 지침에는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현행 형법.의료법과 배치되는 부분도 포함돼 있어 시민단체.윤리학계 등은 생명 경시 조장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이 지침에 따르면, 임종 환자를 '현대의학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질병을 앓고 적극적인 치료에도 반응을 나타내지 않아 사망이 임박했다고 생각되는 경우'로 규정하고, 환자나 가족이 명백히 의미 없는 치료를 요구하면 거절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사망이 임박했거나 계속 혼수상태인 환자가 중환자실 입원을 거절할 수 있고, 뇌사로 진단되면 치료 중단을 적극 검토해야 하며,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위한 심폐소생술도 거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1996년 가족의 요구로 환자를 퇴원시킨 서울 보라매병원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고, 현행 법은 장기 이식을 전제로만 뇌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의협은 그 범위를 너무 넓게 잡은 규정을 만든 느낌이 없지 않다. '생명은 신(神)의 영역'이라는 종교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생명의 존엄성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의협의 이번 지침 내용은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인상도 씻기 어렵다.
▲현대의학으로 도저히 살릴 수 없는 환자에 대한 진료는 환자나 가족에게 고통만 강요할 뿐이라는 의협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하지만 의사들이 이 문제를 주도하는 것은 생명 윤리를 심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의협은 이번 초안을 바탕으로 각계 각층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검토한 뒤 최종 방침을 마련하는 수순을 밟는 게 옳을 것이다. 생명은 단회적이며 우주보다 고귀한 존재이므로 안락사에 대한 판정은 인도적.도덕적 차원에서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고 본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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