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인 것 같지만 범지구화(global)라는 이념적 그물눈이 촘촘해질수록 새삼 강조되는 것이 '가정'의 역할이다. 무한 경쟁과 적자생존의 피말리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하에서 가정과 가족이야말로 '피난처'이자 '휴식처'다.
가정은 이기심에 기초한 경쟁의 논리가 아닌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인간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쟁' 명분으로 가정을 방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19세기 영국은 자유주의 물결이 가장 왕성한 시기였다. 모든 것은 시장원리 즉 엄격한 경쟁원칙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래서 국가가개인을 돕는 것까지도 부도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은 아동과 여성문제에 있어서만은 이러한 흐름에 과감히 맞서 '노동보호법'을 정비했다. 여왕은 가정이라는 것은 '부정한 세계속에 처진 천막'이므로 여성과 아동보호는 절대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영국민들은 이를 '빅토리아의 미덕'이라며 칭송하고 있다.
▲유교적 가족관계를 특히 중시해온 우리나라에서 아동학대의 주범이 '부모'라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서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년간 전국적으로 아동 학대로 판명된 2천128건을 분석한 결과, 발생 장소로는 '가정'이 80%로 가장 많았으며 가해자로는 '부모'가 전체의 87.9%에 달했다는 통계는 믿고싶지 않은 엄연한 현실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학대의 방법이다.
지난해 10월 같은 조사에서는 병든아동을 치료하지 않거나 음식물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방임'행위가 전체의 40.9%로 신체적 학대(41.1%)보다 높았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신체 학대(41.8%)가 방임(37.5%)을 훨씬 앞질러 아동학대가 점점 폭력화, 노골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시인 박목월은 우리 가정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국경도 없는 초(超)국가시대에 이런 '초가집' 정서가 여전히 코끝에 찡한 것은우리 가정이 갖고있는 위대함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경제가 이기주의로 치닫을수록 가정이라는 천막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한계를 드러내는 가정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지금 정부의 '미덕'이 더욱 기다려지는 것도 바로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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