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심장부는 누가 뭐라고 해도 흔히 '두오모'라고만 부르는 중앙 대성당이다. 장엄하고도 화려하게 솟아 있는 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교회 앞, '두오모' 광장에서 '퐁테 베키오'(묵은 다리)까지가 이를테면 번화가 중의 번화가다.
르네상스 당시의 모습 , 그러니까 지금부터 5세기도 더 넘은 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인 이 거리에서는 시간이 영원히 정지한 것 같다. 건물들이나 광장만 보면 그만 시대를 잊게 된다. 그야말로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 들 정도다.
'칼리멀라' 그리고 '로마' 등의 거리에는 3층이나 4층 혹은 5층으로 된 상가가 즐비하고 거기에는 밤낮 없이 관광객으로 넘쳐 난다. '피치오' 미술관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그만 나도 모르게 현란한 상점의 쇼윈도에 눈이 쏠리고 있었다. 거리 전체가 만화경이고 요지경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에 한 옷가게 앞에서 문득 걸음이 멎었다. 여성 의상들이 너무나 매혹적이고 또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한데, 그 중에서도 가죽으로 만든 윗저고리가 한결 돋보였다.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그 질감이 황홀했다. 얇고 결이 고와서 가죽 옷 같아 보이질 않았다.
영락없는 비단 천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럴 수가!' 심히 끌렸던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3천500 유로', 그게 값이었다. 무려, 400만원이 훨씬 넘는 그 놀랄 만한 값을 보고도 나는 별로 놀라지도 않고 있었다.
돈이 많아서는 절대로 아니다. 물건이 하도 절묘했기 때문이다. 같이 간 식솔이 눈을 떼지 못하는 눈치여서 얼른 어깨를 밀치고는 밖으로 나왔다. '가죽옷이 저 경지라!'
그러면서 나는 피렌체가 워낙, 옷 구두, 가방 뭐 할 것 없이, 가죽 상품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며칠 뒤에 로마에서도 좋은 가죽 제품은 피렌체에서 만든 것임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피렌체라는 상공인들의 길드와 공방(工房)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도시 국가다. 이를테면 '상공인 조합 도시'인 셈이다. 길드나 공방에는 당연히 피혁 다루는 상공인들의 몫도 있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백정 조합'과 '백정 공방'이 따로 또 당당하게 유지되고 또 운영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피렌체는 오늘날에도 전 구라파에서 가장 뛰어난 피혁의 도시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이다. 한데 우리라면 어떨까?
'백정!'이라니, 그건 아예 욕설이고 악담이었다. 천민 중의 천민이었음을 모를 사람은 없다.진주에서 비록 '형평사 운동'이 일어나긴 했지만, 오늘날 전통적인 백정과 갖바치는 아예 자취를 감추고 없다. 우리 문화와 산업에서, 백정과 갖바치가 도살(屠殺)당한 거나 다를 바 없다.
한데 일본은 우리보단 한결 낫다. '부라쿠민'(部落民)이라는 이름으로 천대받기는 그들 백정과 갖바치도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부라쿠민 해방'은 여전히 일본의 역사적 사회적 문제로 미적대고 있지만 현대에 와서도 이들의 후예들이 만든 피혁은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자! 이러고 보니, 한국과 일본과 이태리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한국에선 아예 백정도 갖바치도 그들 가죽 다루는 기술도 천대와 박해 속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이에 비해서 일본에서는 천대와 차별 속에서나마 그래도 가죽 다루는 기술은 살아 남을 수 있었다.
한데, 피렌체에서는 천대도 박대도 받은 것 같지 않다. 길드를 조직하고 공방을 운영연하면서 '코무네 디 피렌치', 곧 피렌체 공동체의 건설과 유지와 운영에 이바지해 왔다. 그러면서 세계적 상품을 여전히 과시하고 있다.
이 한국과 일본 그리고 이태리의 차이는 가죽에만 국한된 것 같지 않다. 그 차이가 바로 최근세까지 산업화, 근대화, 민주화의 차이에 영향을 미친 것을 이제 뼈저리게 되새겨야 한다. 누가 우리 생가죽을 벗기기 전에….
(인제대 교수.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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