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처럼 몰려든 관중들의 함성이 초여름 하늘을 뒤덮는다. 녹색의 그라운드에서는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이 거친 숨을내지르며 대포알같은 슛을 쏘아댄다. 흔들리는 골 네트. 열광하는 관중들.
대구 월드컵경기장에서 그 장관이 펼쳐질 날이 이제 20일 남았다. 그런 잔칫상을 앞에 두고 대구 시민들은 우울하다.월드컵 개최지의 단체장인 문희갑 대구시장이 그 빛나는 자리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월드컵이 세계인을 하나로 묶는 코드가 됐지만 대구시의 장외 월드컵은 아직 달아오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기장의 터파기때부터 들며날며 공사 현장을 누비고 닦달하던 대구시장이 진두지휘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대세를 바꾸기엔 힘겨울 것으로 보인다.지난 96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가 결정된 뒤 온 나라가 축하했다.
'월드컵 특수'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한국의 월드컵 생산유발 효과를 11조5천억원으로 발표했고 일본에서는 경제 파급 효과가 3조엔이 넘을 것이라는 민간기업 경제연구소의보도가 양국 국민을 고무시켰다. 지난해 12월 1일 부산에서 조추첨이 끝나면서 대구를 비롯한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개최지 10개도시들의 기대는 한껏 부풀려졌다.
자치단체들마다 본선 진출국의 캠프 유치에 열을 올렸다. 관광객이 몰려들 것이고 식당이나 숙박업소는물론 기념품 가게나 접객업소들은 대박이 터질 것으로 잔뜩 기대했다. 여기에다 개최 도시의 지명도를 세계에 알리고 덩달아 자치단체장의 위상까지도 패키지로 격상시켜 단체장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키겠다는 정략적 의도가 실려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이유중 하나다.'우울한 잔칫집 분위기'
그러나 월드컵은 FIFA (국제축구연맹)가 주최하고 유치국의 개최 도시들은 경기장을 빌려주는 단지 개최도시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반 시민들이 알 때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TV중계권과 입장권 판매는 물론, 돈이 되는 사업권은 모두 FIFA와 조직위원회가 갖는다는사실은 개최지 시민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23개 본선 진출국의 훈련 캠프를 유치한 일본의 개최 도시들은 그것이 기대 만큼의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뒤늦게 깨달았다. 월드컵 공식 로고와 엠블렘을 사용하는 것도 FIFA와 계약을 한 스폰서기업들에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초조해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정이 별로 다르진 않아 보인다. 지난해 5월 대구에서 열린 프레 월드컵 컨페더레이션스컵 축구대회도 주최자는 FIFA였다.개막식 당시 대통령의 참석과 축사를 두고 FIFA에서 '선례가 없다'고 버텨 대구시에서 애를 먹었다고 들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대구시는 개최자로서 초청자 선정 등에서 FIFA 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재주는 곰이 부리고…
여기에다 축구에 대한 문화와 배경도 다르다. 나라간 국경이 우리들의 시도간 경계처럼 열려있는 유럽에서 열리는 월드컵에는 배낭을 멘젊은이들이 텐트촌을 찾아 문화를 교환하고 우정을 쌓는다. 월드컵의 공식 후원사인 바이롬사가 한국과 일본의 호텔 객실 예약을 무더기로 취소한데서도 그 한 부분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런 판에 대구시인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월드컵 열기가 뜰 래야 뜰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월드컵은 개최 도시의 영광이다. 세계적 스타플레이어들이 펼치는 명승부를 땀냄새 맡고 숨소리까지 들으면서 함께 할 수 있는기회임은 분명하다. 개최지 시민으로서 긍지를 가져도 좋다. 또 월드컵이 시작되면 경기장 열기가 장외로까지 뿜어져 나올 것으로 우리는 기대한다.
비록 단체장이 참석할 수 없어도 시민들이 주인이 돼서 손님들을 맞고 또 내년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축제 분위기가 살아나고 무엇이 관광객을 모으며 대구를 찾는 외지인들이 어떤 것을 보고싶어 하는지를 월드컵을 통해 배워야 한다. 경기장 월드컵은 한 달이면 끝나지만 장외 월드컵은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
내년에는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린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가 느끼고 체험하는 모든 것들이 내년 U대회에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내년 U대회는 대구가 주인이 돼 개최하는 또 다른 모습의 세계 대회이기 때문이다.
이경우(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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