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대왕. 누구나 어린 시절 그의 전기를 읽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슴이 뛰고 있음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북부를 정복하는 대목에서 그의 영웅적인 기백과 용기에 뭉클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어른이 돼 인간사와 세계사의 이면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됐을때, 그를 다시 생각해본다. 과연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이자 몽상가였을까. 소년의 호연지기를 키워주는데 더할 나위 없는 인물이겠지만, 더이상 가슴을 아련하게 하는 영웅의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면 권력욕에 사로잡혀 숱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고대 문명을 파괴한 무자비한 독재자였는가. 우리 시대의 잣대일수도 있지만, 솔직히 이쪽에다 판단의 무게를 싣고 싶다. 동전의 양면 처럼 정의와 불의가 뒤섞여 진행되는게 역사라고 하지만, 서양인 중심의 역사에서는 한발자국 뒤에서 바라보고 싶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알렉산드로스, 침략자 혹은 제왕(중앙M&B)'은 불세출 영웅의 활약상과 그 이면에 내재된 탐욕스럽고 광기어린 정복자의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책이다. 영국의 저술가이자 BBC방송 다큐멘터리 진행자인 마이클 우드는 그리스부터 인도에 이르는 알렉산드로스의 여정을 추적하면서 그의 신화 뒤에 숨겨진 또다른 진실을 찾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알렉산드로스의 매력적이고 탁월한 모습뿐만 아니라, 그의 '잔인하고 우울한 광기'까지 세심하게 짚고 있다는 점이 더욱 흥미롭다. 그가 숱하게 학살.파괴를 자행한 저변에는 무자비하고 현실적인 아버지 필리포스와 변덕스럽고 다혈질적인 어머니를 골고루 닮은 선천적 요인과 성장과정에서 '어머니의 과보호'와 권력투쟁 등 후천적 요인이 겹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위대한 영웅의 모습이 헌칠한 장부가 아니라 작은 키에 땅딸막한 체구, 화가 나면 얼굴이 붉어지는 표정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걷거나 낙타, 배, 나귀, 지프 등을 타고 기원전 334년부터 324년까지 유성처럼 아시아를 휩쓸고 지나갔던 마케도니아 군대의 뒤를 쫓아 그 당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알렉산드로스의 웅장한 행군과 핏빛 어린 전투, 방탕한 연회, 살인을 부른 불화는 물론이고, 페르시아 제국의 도시가 파괴되고 페르시아인이 학살되는 과정까지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마치 한편의 잘 만든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역사 기행문이라는 것이 대개 그렇긴 하지만, 뛰어난 구성과 글솜씨로 과거를 탁월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할 만 하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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