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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문화에 깃들어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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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에 다닐 때였다, 전공 실기 수업을 듣던 우리들에게 교수님이 물었다. 왜 봄과 가을에 전시가 많은지 생각해 보았냐고.우리는 별 말이 없었고 교수님은 사람들이 관람하기 좋은 계절에 전시를 열기 위해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 화가들이 쉬지않고 작업에 매진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때만 해도 그 말의 속뜻을 알 수 없었고, 다만 작업하기 어려운 덥고 추운 계절에 더 열심히 작업을 해야 좋은 계절에 전시를 할 수 있겠거니 생각했었다. 미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면서 나는 꾸준히 미술의 언저리에서미술과(더 크게 본다면) 문화라는 것과 인연을 맺고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해 왔다.

작년 화랑에 근무할 때였다. 한달에 한번 꼴로 돌아오는 전시는 시작전부터 여러 가지 준비해야 하는 일들로 인해퇴근이 늦어지기 일쑤였고,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화랑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저녁이 아니면 주말이기 때문에 주말과 휴일에 쉰다는 것은 남의 일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은 나뿐만 아니라 화랑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이 계속되다보니 일에서 느끼는 보람보다는 쌓이는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문화와 가장 가깝게 지내며 아끼고 사랑해야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점점 멀어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남들 일할 때 나도 일하고 남들이 놀 때 나도 쉬면서 이일을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엉뚱한 바람이 점점 커져갈 무렵, 나는 '문화에 종사한다는 것'에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비단 미술 뿐만 아니라 음악, 무용, 문학, 영화 등 문화의 수많은 분야, 그 속에 깃들어 살아간다는 것은 보여지는 삶 뒤의 봉사와 희생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의 인내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전시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처럼, 문화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낮과 밤, 평일과 휴일을 거꾸로 돌고 있는 시계는 고달픈 희생의 상징이 아니라 삶의 더 큰 부분을 나누기 위해 먼저인내하며 준비하는 이의 몫이라 생각한다.

김혜경(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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