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이야기-비디오와 설치작품

광주비엔날레를 처음 구경한 사람들은 비슷한 의문을 갖기 마련이다. "도대체 그림은 어디에 있나?" 미술행사를 보러왔는데 그림이 없다니….

덩치 큰 설치작품과 현란한 영상이 전시장을 꽉 채우고 있고, 평면회화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다 한쪽 구석에서 평면회화를 발견하게 되면 반가운 마음이 들지만, 영상과 설치의 화려함에 주눅든 듯한 모습에 씁쓸한 느낌이 겹친다.

우리가 흔히 미술이라고 생각하는 평면회화나 조각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게 아닐까. 국내에도 갈수록 젊은 작가들이 영상,설치 등 현대미술의 첨단에 매달리는 추세다.

한 중견작가의 얘기. "대구만 해도 구상 회화를 하는 젊은 작가들이 꽤 있지만, 광주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광주비엔날레 영향 탓에 대부분 찍고 붙이고 세우는데 골몰하죠…".

사실 설치작품(Installation)은 패스트푸드 같은 산업문화의 산물이다. 전시공간의 여건에 맞춰 작품을 설치하는 현장위주 작업인데다 생활용품,사진, 자연물, 심지어는 자신의 신체까지 표현매체로 이용되는 특성 탓이다.

이 방면의 선구자는 독일의 요셉 보이스(1921∼87). 그는 1974년 미술사에 기념비적인 작품 '코요테-나는 미국이 좋고 미국은 내가 좋다'를 발표, 논란을 불렀다.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수 있겠지만, 현대미술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적절한 사례다.

모자를 눌러쓴 보이스는 뉴욕 케네디공항에 내려 곧바로 구급차를 타고 화랑으로 직행했다. 한번도 창문밖으로 시선을 던지지 않은 채…. 화랑에는북미에서 야생하는 코요테 한마리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천으로 온몸을 가린채 코요테와 동거를 시작했다.

처음에 인간을 경계하던 코요테는 며칠이지나자 보이스에게 호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보이스가 일주일간 코요테와 생활한 후 쏜살같이 케네디공항으로 달려가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비행기에 오른후 "나는 코요테에만 전념했다. 그외의 미국은 일절 보지 않았다"고 일성을 토했다. 덧붙여 그는 "나는 스스로의 위치를 벗어나 별개의 영역에 몸을 던져 그곳에 살고 있는 것들과 동일화를 꾀했다.

별개의 영역에서 존재와 자유, 자각에 도전한 것이다"고 말했다. 현대미술가는자신의 작품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고 의미부여를 해야만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는 모양이다.

다소 황당한 내용이지만 20세기 후반 최고 미술가로 불리는 작가의 작품인 만큼 인정해주지 않을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처럼 현대미술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지만 '확장된 미술개념'의 의미만 담았다면 작품으로 인정받는게 보통이다. 미술의 발전인지 퇴보인지는 모르겠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