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느 女 정치인의 부패와 투쟁사

지난 2월 23일 콜롬비아에서 야당 대통령후보가 반군 콜롬비아혁명군(FARC)에게 납치됐다. 이달 26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로 돼 있는 중도좌파 산소당(黨) 당수 잉그리드 베탄쿠르 후보다.

반군 포로와 교환 석방을 주장하는 반군측의 볼모로 석달째 억류돼 있는 베탄쿠르를 위해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를 비롯한 여러 시민.인권단체들이 석방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콜롬비아의 딸 잉그리드 베탄쿠르'(뿌리와 이파리刊)는 바로 이 용기있는 콜롬비아 여성 정치인 베탄쿠르의 반평생 자서전이다. 여기서 '용기'는 콜롬비아의 현실로 볼 때 진실을 밝히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용기'를 뜻한다.

이 책은 마약마피아, 반군, 부정부패, 내전으로 점철된 콜롬비아에서 교육장관과 유네스코 대사를 역임한 아버지, 상원의원까지 지낸 어머니 사이에서 특권층 자녀로 태어나 유럽 등지를 오가며 성장한 베탄쿠르가 가족과 안락한 삶을 내던지고조국 콜롬비아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베탄쿠르는 어린 시절 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글벗'이라 부르며 아끼던 소녀였다. 거실 피아노 밑에 숨어 어른들이 콜롬비아의 현실에 대해 개탄하는 이야기를 엿들으며 자란 베탄쿠르는 프랑스의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을 졸업했다.

그는 프랑스 외교관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로 안온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고통받는 동포들과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던 베탄쿠르는 결국 결혼 10년만에 이혼을 감수하고 조국으로 돌아가 현실과 부대끼기로 결심한다.정부 부처에서 실무를 익힌 베탄쿠르는 끝간데 없이 부패가 만연한 현실을 목도하고는 맨주먹으로 정치에 뛰어든다.

젊은 여성 정치인의 참신하고 투명한 정견과 직설적인 발언은 서민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어 1994년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며, 98년에는 산소당을 창당하고 전국 최다 득표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그의 의회활동은 삼페르 전 대통령의 마약마피아 선거자금 수뢰를 고발하고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를 비판하는 등 '부패와의 투쟁' 그 자체였다. 96년에는 당시 삼페르 대통령과 마약 카르텔의 유착관계를 고발하는 '그는 알고 있었다'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같은 행동으로베탄쿠르와 두 자녀는 암살 테러의 위협을 여러 차례 받았고 결국에는 아이들을 나라 밖으로 피신시켜야 했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보름간의 단식투쟁도 불사했던 베탄쿠르는 국제무대에서 '콜롬비아의 비둘기' '미시즈 콜롬비아'로 불린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발간된 이 책(원제 La Rage au Coeur 가슴에 솟는 분노)은 프랑스와 유럽에서 3개월 이상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저자가 납치되는 바람에 예정됐던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은 무산됐다. 이은진 옮김. 288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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