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만학도의 대리출석

어느 날 야간강의 때였다. "○○○!"하고 출석을 불렀다. 남학생 이름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한 여학생이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이름이 남성적인 여학생이 있긴 하지만 그 날 따라 예감이 좀 이상했다.

그런데 강의를 마치자마자 그 학생이 먼저 다가와서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내가 따져보려고 했는데 잘되었군!' 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연구실로 따라오라고 했다.

연구실에 들어온 그 학생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라며 자초지종을 물었다. "사실은요…" 무언가 말을 하려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사실은요… 저의 남편이 출장을 갔는데 제가 대신 출석을 했습니다. 교수님, 출석으로 인정해주세요."'이럴 수가…! 정말 별일이로군!' 순간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녀는 만학도인 남편을 대신해 출석한 만학도의 부인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고,'세상에 이런 기특한 일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고는, 학칙에도 틀림없이 이런 조항이 없겠지만, "출석으로 인정해 드릴 테니 돌아가세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고맙습니다."하고는 문을 열고 저만치 나갔다.

그런데, 나가다 말고는 또 다시 들어오는 것이었다. 다시 들어와서 하는 말이, "내일 또 올 테니 내일도 인정해주세요."'…!' "내일은 안 오셔도 인정해 드릴 테니 오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고 돌려보냈다.

만 17년째 강의를 하면서, 솔로몬의 잠언 중의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라는 말씀처럼, 진리를 소중히 여기며 힘들게 학업을 마친 그동안의 만학도들이 생각난다.

대구섬유업계 여성 사장인 M섬유의 석사장님, 대구의 저명 디자이너 최선생님, Y대학 조교수님, D실업의 이사장님, 고등학교 동기이자 제자인 D섬유의 조사장…. 모두 기억에 남는 만학도들이다.대구섬유업계 및 학계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계시는 존경스런 만학도들이여, 파이팅!

이춘길(경일대 교수.섬유패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