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관중석 메시지-그래도 축구공은 둥글다

계절의 여왕인 오월의 마지막 봄밤을 월드컵 축포로 장식하였다. 한 달 동안 지구촌을 달굴 꿈의 구연(球宴), 2002 한.일 월드컵이 오랜 기다림 끝에 비로소 막이 올랐다.

전 세계 60억 축구팬들의 눈이 서울로 쏠린 가운데 열린 상암운동장의 개막식은 화려하고도 장중하였다. 우리의 고유전통과 첨단전자기술이 조화롭게 아우른 걸작품이었다. 환상적인 개막식에 이어 오후 8시 30분부터 열린 프랑스와 세네갈의 첫 경기는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전 대회 우승국인 프랑스와 월드컵 첫 무대의 데뷔전인 세네갈의 경기는 한마디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비유되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본 결과 세네갈이 1 대 0으로 승리하였다. 전반전 30분에 터진 이번 월드컵 첫골의 주인공은 부바 디오프 선수였다.

승리의 여신이 세네갈의 손을 들어 준 이변의 한 판이었다. 인간사가 모두 예측대로만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싱겁겠는가. 프랑스 축구의 핵인 지단 선수가 부상으로 빠졌다곤 하지만 프랑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승후보가 아닌가? 그러나 세네갈은 아프리카 특유의 투지와 유연성으로 프랑스의 벽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세네갈은 오랫동안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왔다. 압박과 설움의 오랜 역사가 이 월드컵 개막전 승리로 세네갈 국민들의 가슴에 얼마간은 위안이 되었으리라. 1960년 8월 세네갈공화국의 수립과 함께 초대 대통령로 선출된 셍고르는 빼어난 흑인시인이었다. 한 때 시인이 다스렸던 세네갈은 비록 가난한 나라이지만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된 국가이다.

모든 스포츠정신은 화합에 있다. 21세기에 열리는 첫 월드컵은 축구를 통해 세계인들을 평화와 화합의 끈으로 묶어준다. 이념과 체제, 종교와 인종을 뛰어넘어 미래에 희망을 심어주는 월드컵은 지구촌의 제전이다.

월드컵은 단순한 체육행사를 넘어 외교 경제 문화를 망라한 지구촌 최대의 축제에 한국인의 저력과 문화의 힘을 마음껏 보여주자.

스포츠에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축구공은 둥글다. 축구공은 떠돌이별이다. 공은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둥글다는 것은 진실이다. 그래도 지구는 끊임없이 자전(自轉)한다. 성적에 너무 연연하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용기에 더 많은 갈채를 보내자. 승자에겐 아낌없는 격려의 환호를, 패자에겐 따뜻한 위로의 박수를 보내주자.

박진형(시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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