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지선 앞둔 시내 표정

31일 오전 11시10분 대구 성당시장. 30℃가 넘는 더위속에 구청장 선거에 나온 무소속 후보가 쉰 목소리로 유세를 시작했다.

"남구 발전을 책임지겠습니다. 지방분권을 이루기 위해 무소속 후보로..." 그러나 유세 연단 앞에서 차량이 엉키며 지나는 운전자들의 불평이 쏟아졌다. 소란도 잠시, 시장은 이내 정적에 잠겼다.

후보는 상인들을 만나기 위해 시장통에 나섰다. '너무 일찍 서둔 탓일까' 시장엔 상인밖에 없다. 파리채를 든 난전 상인이 엉거주춤 후보를 맞았다. 명함을 건네는 후보나 받은 상인 모두 머쓱한 표정이다.

채소전 박일선 할머니(70)는 "남구 발전을 약속하는 사람이 많기는 한데...아무나 찍으면 운좋은 사람이 되겠지"라고 한마디 던지며 다시 채소다듬기 일에 열중했다.

옆에 서있던 옷집 주인 김정숙(43·여)씨도 "하루에도 이런 저런 후보가 몇명씩 오기는 오지만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네댓살 먹은 아기 손을 잡은 젊은 엄마는 후보가 건넨 인사를 외면하며 총총 걸음으로 시장통을 빠져나갔다.

낮 12시20분 범어네거리. 한 무소속 시의원 후보의 유세차가 확성기를 크게 틀며 어린이회관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후보와 운동원 2명이 허공에 대고 계속 고개를 숙였다. 곧이어 한 시장 후보의 유세차가 나타나 월드컵송을 개사한 로고송을 틀어댔지만 노랫소리는 차량물결에 묻혀 버렸다.

1시15분 범어시장. 한 시장 후보가 오자 한적하던 시장통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대학생 또래로 보이는 10여명의 운동원들이 요란스레 율동을 했다. 유세차에서는 운동원 한 명이 한 손엔 마이크를, 다른 손엔 홍보내용이 적힌 A4용지를 움켜쥐고 가두 유세를 했다.

후보는 곧장 시장통에 들어가 상인들에게 명함을 건넸다. 고깃집 주인이 명함을 쳐다보며 앞에 다녀간 다른 후보의 명함과 비교해 보는 눈치였다. 옆에 선 상인은 "누고. ×××냐"고 묻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같은 시각, 시장통 입구에 세워둔 유세차량과 인근 상가의 무단정차로 차량이 엉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일부 시민들은 후보 운동원들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후보가 떠나자 소란도 없어졌다.

2시20분 수성구 지산동 동아백화점앞. 민주당 당적의 한 구청장 후보가 가두 유세전을 벌이고 있다. 횡단보도를 오가는 주민들에게 명함을 건네며 90도 인사를 했다. "아들을 군에 보내지 않은 사람, 손녀를 원정출산한 사람, 그런 사람에게 표를 찍어서는 안됩니다"라고 유세도 했다. 그러나 인근을 지나는 사람중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절반을 넘었고 후보를 따라온 운동원들 외에는 박수소리가 나지 않았다.

4시20분 봉덕시장 앞 한 정당의 정당연설회장. 대선 후보와 국회의원 등 유력 정치인을 보기 위해 몰려든 당원들로 북적댔다. 당원을 빼면 실제 자발적으로 찾아온 사람은 수십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사람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무소속 시·구의원 후보 유세차 4대까지 나타나, 정당연설회인지 합동연설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서울서 후보를 따라온 한 당직자는 "지난 총선과 비교해 분위기가 식다 못해 얼어붙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어 대통령 후보가 연설을 마치자마자 자리를 뜨면서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상인 김모(55)씨는 "시장입구에서 왜 난리들인지 모르겠다"며 "가뜩이나 장사가 안되는데 선거고 뭐고 다 귀찮다"고 말했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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