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노블레스 오블리제'

요즘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현기증뿐 아니라 구토가 날 지경이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권위와 명예, 그들에 대한 존경심과 선호도가 땅에 떨어지고 있는 느낌 때문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인들의 위상과 신뢰가 처참할 정도로 비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부정부패와 반윤리.도덕적인 행태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면서는 지위나 전문성의 높고 낮음, 신뢰의 깊고 얕음이 반비례하는 현상마저 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연말 우리나라 대학생 대상의 한 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직업은 환경미화원, 그 다음이 농부와 어부, 소방공무원 순이었다.

존경도가 가장 낮은 직업은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이었으며, 공헌도.청렴도마저 국회위원이 꼴찌로 나타나 충격을 준 바 있다. 1996년의 비슷한 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직업이 판사와 검사.의사.변호사 순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요즘 선진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불거져 또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영국 BBC라디오4 방송은 최근 영국인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가장 존경받지 못하는 직업이 정치가였다고 보도했다.

2위는 부동산 중개업자이고, 3위는 정부 각료, 4위는 변호사, 5위는 기자였다. 축구선수도 6위로 꼽혔다. 하지만 가장 존경받는 경우는 1위가 의사, 2위는 간호사, 3위는 교사, 4위는 소방대원, 5위는 구조대원으로 나타났다니 그나마 우리보다는 나은 편이다.

사실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젊은층과 보통사람들의 반항심리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겠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온갖 분야의 지도층 인사들이 비리의 주범으로 거론돼 온 게 사실이지 않은가.

특히 환경미화원을 가장 존경하는 반면 정치인이나 정부 각료를 그 바닥에 놓는다는 대목은 역설적으로 명예와 권위, 재력으로 상징되는 직업에 '진정 존경할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리 없는 외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흔히 오늘날을 '노블레스 오블리제(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인 의무)'를 잃어버린 시대라 한다. 사회 지도층보다 비록 신분이 낮고 인기는 적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을 원하는 분위기도 이해가 간다.

우리의 경우 IMF 체제 이후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지만 신분이 보장되고 안정성이 있는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도 있었다. 이 선거철에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폄하하는 젊은이들과 보통사람들의 '가시 돋친 일침(一針)'을 아프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돼야만 할 것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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