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 폴란드전에서 첫 승을 거두기까지는 반세기에 걸친 짧지 않은 좌절의 시간이 있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54년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 첫 도전장을 던졌고 지역예선에서 일본을 1승1무로 따돌리는 쾌거를 거두고 제5회 대회가 열린 스위스로 향했다.
하지만 한국은 열차와 배, 그리고 미국 공군기를 얻어타며 일주일만에 대회지에 도착했고 이튿날 가진 첫 경기에서 헝가리에 0대9로 무너지며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역대 월드컵 최다 점수차 패배의 수모를 안아야했다.
일주일 뒤 터키에도 0대7로 진 한국은 세계의 높은 벽만을 실감한 채 그대로 고국행 짐을 싸야했고 월드컵에서 태극 전사의 모습을 다시 보기까지는 32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86년 멕시코월드컵. 한국은 차범근과 허정무, 최순호 등을 앞세워 본선행을 결정지었지만 본선 조추첨의 행운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이 대회 우승을 차지한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그리고 동구권의 다크호스 불가리아와 한 조에 속한 것.
한국은 아르헨티나와의 첫 경기에서 마라도나의 어시스트로 3골을 내리 내주며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후반 28분, 반도를 깨운 25m짜리 벼락슛이 주장 박창선의 발끝에서 터졌고 첫 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사상 첫 골로 자신감은 더해졌다.
이어 그나마 만만하던 불가리아를 맞아 선제골을 내준 뒤 허정무의 골로 1대1 동점을 만들었지만 사상 최초의 승점을 얻는데 만족해야 했다.
마지막 이탈리아전에서는 후반 중반까지 1대1로 팽팽하게 맞섰지만 석연치 않은 페널티킥을 내주면서 전세가 기울었고 결국 2-3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4년 만에 다시 찾은 월드컵은 이탈리아에서 열렸다. 김주성, 변병주, 최순호 등 베테랑에다 홍명보가 대표팀 막내로 합류한 한국팀에게는 16강에 대한 장밋빛 환상까지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대회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한국 축구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당대 최고의 미드필더인 엔조 쉬포를 앞세운 벨기에에게 0대2로 진 한국은 두번째 상대인 스페인전에서는 시속 144㎞를 기록한 황보관의 캐넌슛이 터지기도 했지만 1대3으로 무너졌고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도 0대1로 패해 1승의 꿈은 요원하기만 했다.
이라크가 일본의 발목을 잡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94년 미국월드컵은 1승의 꿈에 가장 가까웠던만큼 아쉬움도 크게 남은 대회였다.
어느덧 월드컵 단골 손님이 된 한국은 4년 전에 만났던 스페인과 재격돌했고 전반까지 결정적인 찬스를 자주 연출하며 팽팽한 대결을 펼쳤지만공은 결코 골문을 통과하지 않은채 오히려 후반 초반 2골을 내줘 패색이 짙었다.
다행히 막판 5분을 남겨놓고 홍명보와 서정원이 믿겨지지 않는 연속 골로 균형을 이뤄 세계에 한국의 '뒷심'을 알렸지만 첫 승의 꿈은 또다시 다음으로 미뤄야했다.
두번째 상대인 볼리비아는 그나마 한국이 지금까지 만난 상대중 가장 약한 팀이라는 평가였고 실제로 한국은 주도권을 쥐고 경기를 펼쳐나갔다.
그러나 황선홍이 결정적인 찬스를 여러차례 실축하면서 0대0 무승부로 끝났고 남은 상대는 전 대회 우승팀 독일이었다.
골키퍼의 실수 등이 겹치면서 전반을 0대3으로 끌려간 한국은 후반 들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듯 스위퍼 홍명보를 플레이메이커로 끌어올려공격적으로 맞섰고 후반 7분 황선홍, 18분 홍명보가 연속 골을 터트리며 마지막까지 독일을 거세게 몰아붙였지만 더 이상 골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98년 프랑스월드컵 첫 상대인 멕시코전은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는 한국인이라면 지금까지도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는 경기일 것이다.
전반 28분. 20m 지점에서 하석주가 찬 프리칙이 수비수 머리에 맞고 그대로 골문에 꽂혔고 사상 첫 선취골에 온 국민은 환호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채 2분이 지나지 않아 하석주는 백태클로 퇴장당했고 결국 멕시코의 파상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1대3으로 무릎을 꿇었다.
첫 승의 기회를 너무나 속절없이 날려버린 한국은 마음을 추스르고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전에 나섰지만 상대의 기량은 우리가 생각하던 이상이었고 0대5의 참패를 당한다.
이미 16강 실패가 결정되고 차범근 감독까지 사상 처음 중도에 경질됐지만 한국은 첫 승이라는 염원만은 보답한다는 생각으로 벨기에전에 나섰다.
전반 7분 선취골을 빼앗겼지만 한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마침내 후반 26분 유상철의 골로 균형을 맞췄다.
나머지 시간, 전 선수와 온 국민이 하나돼 역전골을 기대했고 이임생이 피가 나는 머리를 붕대로 감싸고 쥐가 나는 선수들이 피를 뽑아가며 맞섰지만 끝내 골은 터지지 않았다.
한국의 투혼에 세계가 박수를 보냈지만 한국 대표팀 앞에 남은 것은 4무10패라는 초라한 성적표였다.
그로부터 4년. 당시 한국에 대패로 안겼던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한 한국은 안방에서 동구권의 강호 폴란드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며 48년동안 꿈꿔왔던 숙원을 통쾌하게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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