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인재경쟁시대

대학가에 '그랜저 타는 나이가 한의대는 30세, 의대는 35세지만 공대는 45세, 자연대는 영원히 못 탄다'는 말이 나도는 모양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고교생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이 분야 인력의 사회적 지위와 소득 하락 때문이라는 보고서를 펴내면서 소개한 농담이지만 뼈 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최근 한국산업인력공단 중앙고용정보원이 내놓은 '직업 지도'에도 월평균 수입이 가장 많은 직업은 변호사이며, 그 다음이 항공기 조종사, 기업 고위임원, 공연예술 관리자, 변리사, 의사 순이고, 여성의 경우는 의사가 으뜸으로 나타났다.

▲지난 3일 시작된 2003학년도 대입 수시 1학기 원서 접수에서도 의예과 등 일부 인기 학과는 50대1이 넘어선 반면 일부 이공계는 미달되는 양극화 현상이 빚어져 과학기술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 1970, 80년대만 해도 과학기술인 우대로 이공계 고급 인력들은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으며, 청소년들의 선망 분위기 속에서 고도 성장을 일궈냈던 시절을 떠올리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서울대 물리학과 김수봉 교수가 권위있는 국제기관인 미국 과학정보연구원이 뽑은 '최고 15인의 물리학자'에 올랐다. 지난 10년간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이 다른 논문에 많이 인용된 덕택이다. 80년대부터 미시간 주립대 등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중성미자' 발견 등 많은 업적을 쌓아 미국 정부도 '군침을 흘린' 과학자로 영주권까지 받았던 그는 96년부터 보스턴대 교수를 지내다 98년 우리나라의 우수한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기 위해 돌아왔다 한다.

▲이번 일은 김 교수의 '과학자로서의 큰 영광'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의 영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김 교수도 청소년들이 점점 기초과학을 외면하는 현실을 우려하고 있듯이, 이공계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장래에 불안을 느껴 고시나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는 세태는 걱정이다. 더구나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학들의 이공계 학생들이 국제적으로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얻고 있으며, 근래에는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세계를 향해 약진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인재는 바로 국가·사회 경쟁력의 원천이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지식정보화·기술패권주의 시대에는 고급 인력이 국가의 사활(死活)을 좌우한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최근 "지금은 한명의 천재가 천명, 만명을 먹여 살리는 인재 경쟁의 시대, 지적 창조력의 시대"라며, 그룹 차원의 고급 두뇌 확보에 비상등을 켰다니 여간 반갑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실제로는 너무나 미온적이다. 삼성의 전략이 귀감이 되고, 널리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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