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거법 불합리"...무소속 광역후보들의 하루

무소속 후보의 하루는 힘겹다. 지방선거 관련법은 선거운동의 대부분이 정당 공천 후보가 유리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이번 선거 역시 특정 정당에 대한 편향 정서가 춤추고 있다. 대구시의원 선거에 출마한 수성구 두 무소속 후보의 고군분투 현장을 찾았다.

◈무소속 광역의원 후보 김모씨=김 후보는 요즘 뜻을 접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자정을 넘겨서까지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하는 느낌 뿐이다.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돈도, 조직도 없이 출마한 게 후회스러울 때도 많다.

공인회계사로, 대구경실련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대구시의 방만한 예산운용을 눈뜨고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출마 이유였다. 김 후보는 "대구시에 여러차례 정보공개를 요청하면서 회계전문가가 나서지 않고선 제대로 시민혈세를 지킬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을 줄곧 갖다가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시장통을 쫓아다니느라 발이 부르튼 것은 둘째치고 유권자의 냉담, 무소속에게 불리한 선거법 때문에 별 표도 나지 않는 운동을 하고 있다. 김 후보는 "하루에도 몇번씩 좌절한다"며 "미친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이곳 선거구의 유권자는 8만4천명. 쉬지 않고 발품을 팔아도 하루에 300명 이상을 만나기 힘들다. 얼마 안남은 선거일까지 몇 명의 유권자를 더 만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요량할 수 없다.

그는 "적잖은 인생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라며 "불교에서 말하는 하심(下心)의 의미를 새기고 있습니다"고 했다. 남보다 먼저 수그리고 마음을 낮추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인내를 깨치면 당락을 떠나 성공한 선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김 후보는 "그래도 남은 선거기간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무소속 광역의원 후보 정모씨=전직 대구시청 공무원인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7번이나 완주할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이다. 그런 그가 요즘 치르는 선거전은 마라톤 완주보다 더 힘들다고 했다.

7일 오후 수성구 범물동 한 아파트 앞. 낮기온이 35℃를 넘어선 이날 세 번씩이나 이 곳을 찾았지만 사람을 제대로 만날 수 없었다. 한 50대 중반의 여성이 다가오자 반색을 하며 달려간 그는 90도 인사부터 했다.

그리곤 자신을 알리는 전단지를 "한 번 읽어 봐 주십시오"하며 쓱 내민다. 거의 애원조다. 잠시 당황해 하던 이 여인은 읽는 시늉을 한 뒤 "알았다"며 짧게 말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정 후보는 "도대체 나를 알릴 길이 없다"고 하소연 했다. "체력 하나로 버티고 있지만 선거운동 기간이 열흘만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고백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등산로와 공원, 시장통과 골목길을 도는 강행군을 며칠째 계속하고 있다. 선거 구호도 월드컵 축구에 착안해 '대한민국 8강으로, 정××를 시의원으로'로 마련했지만 그리 반향이 큰 것 같지는 않다.

그가 불혹을 넘긴 나이에, 그것도 '철밥통'이라는 정년 보장의 직장을 포기하면서까지 선거판에 뛰어든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지난 94년부터 시의회의 건설환경 전문위원실과 시청 예산담당관실에 근무하면서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일부 시의원들이 시정을 감시하기 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의안을 만들거나 집행부의 들러리에 급급한 의정활동을 보면서 '아예 내가 나서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는 것.

정 후보는 시의회(94~97)에 근무하던 시절, 일화 한 토막을 소개했다. 통상 다음해 예산안이 나오면 심의 열흘 전 의원들에게 예산안 뭉치를 보자기에 싸서 집으로 보냈다. 하지만 "보자기를 풀어 한 번이라도 예산안을 제대로 읽어 본 의원이 드물었다"고 회고했다.

정 후보는 최근 선거벽보를 제작하면서 학력과 경력을 넣지 않았다. 혈연과 학맥에 얽매이지 않고 인물 중심의 깨끗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뜻에서 아이디어를 짠 것이다. 그는 "무소속의 벽이 얼마나 높인지 실감하고 있다"며 '자신의 정열'을 유권자에 알릴 수 없는 현실이 실망스런 눈치였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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