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람이 가장 기분 나쁠 때는 한여름 낮최고 기온이 다른 도시에 뒤졌다는 뉴스를 들을 때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1942년 8월1일 기상관측 이래 최고인 40℃ 기록을 갖고 있는 만큼 더위에 대한 자부심은 남다르다. 분지 특유의 온실 보온효과 속에서 뿜어내는 도심의 열기는 적당한 습기까지 머금고있어 마치 한증탕 문을 열어놓은 것 같다.
외지인들은 여름철 대구 더위에 혀를 내두른다. 그런데 이 지긋지긋한 대구 더위가 요즘 온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으니 그야말로 더위가 약(藥)이 되는 수도 있는 모양이다.
7일 대구 낮 최고기온이 35.4℃를 기록하자 한국 월드컵팀을 응원하는 붉은 악마들은 야단이 났다. 16강 진출의 최대 고비인 한국 대 미국전이 오는 10일 대구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그날도 불볕더위가 예상돼 양팀 모두 고통스런 경기를 치를 것이 틀림없지만 체력이 뛰어나고 한국적 더위에 익숙한 우리 팀이 훨씬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기상청은 이미 10일 대구지역의 날씨는 '흐린 가운데 최고 33℃까지 오르는 무더위가 계속될 것'으로 예보했다. 콘크리트 구조물로 둘러싸인 경기장은 바깥기온보다 적어도 2, 3℃ 높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축구선수에겐 그야말로 '용광로' 수준이라 경기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날씨가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어쩔 수가 없다. 워털루 전투에서 때마침 쏟아진 폭우로 나폴레옹군이 자랑하던 포병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패배한 일화나, 적벽대전에서 공명이 주유의 화공(火攻)을 돕기 위해 남병산에 올라가 동남풍을 일으킨 사례에서 보듯 날씨는 전쟁의 승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투표율은 그날의 날씨에 따라 크게 좌우되기도 한다.
날씨 정보를 잘 활용한 판매업체는 평균 20%이상의 매출액 증가를 보였다는 통계도 있다. 요즘은 날씨에 따라 광고효과도 달라진다. 날씨 정보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기업 활동에 큰 효과를 보고 있는 업체에 과기부가 '날씨경영대상'을 수여하기도 한다. 더운 날씨가 선수를 지치게 하지만 항상 악영향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더운 날씨에는 공기의 밀도가 낮아져 투창이나 원반던지기 선수들에겐 오히려 유리하다. 야구에서는 습도가 높고 흐린 날은 타자보다 투수에게 유리하다고 한다.
투수 입장에서는 습도로 인해 공을 잡을 때 감각이 훨씬 살아나지만 야구공의 비행거리를 10% 정도 감소시켜 타자가 공을 쳐도 멀리 날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10일 빅게임은 더위가 엄청난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
미국 브루스 감독도 "한국민의 대대적인 응원도 부담이지만 무엇보다 30℃를 훌쩍 넘는 한낮 무더위를 어떻게 견디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소문난 대구의 폭염이 과연 온 국민의 16강 진출 염원에 얼마나 기여를 할지 이래저래 월드컵은 흥미를 더해가고 있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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