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술은 불가분의 관계인가.
요즘 화제를 모으는 영화 '취화선(醉畵仙)'을 보면 오원 장승업은 아예 술독을 끼고 사는 모습으로 나온다. 장승업은 술에 취해야붓을 잡을 수 있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이쯤되면 술을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중독' 상태로 봐야 되지 않을까.
조선시대 화가들은 술을 무척 사랑했다. 취흥(醉興)에 흠뻑 젖어 불후의 걸작을 완성했고, 실수를 연발한 애교있는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조선시대 최고 화가로 꼽히는 단원 김홍도(1745∼1806)도 지독한 애주가였다. 스스로 취화사(醉畵師)라는 호를 붙였을 정도로 취중에 그림을 자주 그렸다.
김홍도 같은 천재도 술에 취해 실수를 한 모양이다. '송하담소도(松下談笑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단원의 친구 이인문(1745∼1821)이 그림을 그리고, 단원이 화제(畵題)를 쓴 작품이다. 단원은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시 한편을 옮겨 썼는데 3, 4행과 5, 6행의 순서가 바뀌었고 글자 한자를 빼먹었다가 뒤늦게 덧붙였다.
너무나 인간적이지 않는가. 그래서 대가가 실수한 작품은 미술시장에서도 더 높은 대접을 받는 모양이다. '달마도'를 남긴 김명국(1600∼미상)도 못말리는 주당이었다. 그 역시 취옹(醉翁)이란 호를 썼다. 그는 그림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술부터찾았고, 취흥이 도도하지 않으면 재주가 다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달마도는 북북 그어내린 몇가닥 선으로 달마대사의 모습을 표현한 걸작인데, 그림을 완성하는데 1,2분이 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술에 취한 채 일필휘지로 붓을 몇차례 휘둘렀음에 분명하다.
호생관(毫生館) 최북(1712년경∼61년경)도 빠트릴 수 없다. 한쪽 귀를 스스로 잘라버린 빈센트 반 고흐(1853∼90)처럼, 제 손으로 오른쪽 눈을찔러버린 '미치광이' 화가였다. 고흐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독주 압생트를 마시면서 발작적인(?) 그림을 그렸다면, 최북도 언제나 막걸리를 끼고 그림을 그렸다.
"그는 하루에 5,6되의 술을 마셨는데, 시중의 장사 아이가 술병을 들고 오면 집안의 책과 종이 등을 끌어내어 전부 털어주고 사곤 했다"(유홍준의 화인열전 중에서). 술에 취해 자신의 기(氣)를 순간적으로 표출한 김명국, 장승업과는 달리, 그는 세상에 대한 분풀이로 술을 마셨기때문에 취흥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
요즘 화가들도 옛 화가들의 후예답게 술을 즐기는 이들이 무척 많다. 술에 취하면 작업실로 돌아가 취권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약간 흐트려졌을 때, 자신의 진정한 내면을 끄집어 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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