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주 利見臺 위치 잘못됐다

"사적 제159호인 이견대(利見臺)의 위치는 잘못 지정된 것입니다. 이견대의 올바른 위치는 현재의 해변가가 아니라 여기서 500m 가량 떨어진 산위로 추정됩니다".

전 동국대 총장 황수영 박사가 37년전 자신이 선정했던 이견대의 위치가 잘못된 것이었음을 밝혀 정밀한 발굴조사 등을 통한 사적의 정확한 위치 재선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황 박사는 최근 불교신문에 기고한 '경주 이견대'에 관한 불적일화(佛跡逸話)에서 " 삼국유사 등 문헌에 따르면 이견대는 '축성(築城)의 자취'가 있다고 기록돼 있으나, 현 위치에는 그러한 흔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1965년 이견대지 시굴조사 당시에도 이견대의 위치를 둘러싸고 해변설과 산상설이 엇갈렸으나 건물지가 발견된 현 위치를 이견대로 지목했다며, 이것이 성급한 판단이었음을 인정했다.

황 박사는 그래서 문헌에 나오는 축성의 자취를 찾아 일대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7년전 가을 대본초등학교 뒷산에서 3면에 인공으로 축석된 자리를 확인했다고 밝히고, 이곳이 이견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대본초등학교 뒷쪽에서 5분 정도 완만한 산길을 오르면 400~500m의 넓은 공간이 있는데 이곳은 동해구가 한눈에 조망되는데다 서쪽으로 감은사로 통하는 옛길의 존재도 짐작된다는 것. 실제 대본리 촌로들은 과거에 이곳에서 기와조각이 많이 나왔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1995년 학계의 지표조사에서도 그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신문왕이 이견대에서 동해의 문무왕릉을 참배하고 만파식적을 얻은 다음 감은사로 가서 묵었다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행적과도 일치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이견정 자리는 조선시대에 설치된 역원인 이견원(利見院)일 것 이라는게 황박사의 주장이다.

이견대는 통일신라의 신문왕이 동해에 행차해 대왕릉을 바라보며 부왕인 문무대왕의 통일위업과 호국정신을 기리고 추모하던곳이자 동해의 용을 만나 만파식적을 얻은 곳으로 전해오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사적지 지정후 신라의 건축양식을 추정해 복원한 것이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