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혼의 축구

한·일 월드컵 대회 본선리그를 앞두고 한국의 히딩크 감독은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꺾고난 후 세계 언론은 '72년 월드컵 사상 최대 이변'(영국BBC)이며 이제는 우승도 노려볼 만하다(미국 뉴욕타임스,프랑스 TFI방송,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고 극찬하고 있다.

유럽의 도박사들도 우리의 우승가능성을 당초 150대1에서14대1로 높였고 우승후보로는 5위에 올려놓고 있다. 정말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

이 성공의 힘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물을 것도 없이 한국형 축구에서 나온 것이다. 그럼 한국형 축구는 무엇인가. 그 원형(原型)을 찾아보자.

사실 한국 축구의 원형은 한국청소년 팀이 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박종환 축구'가 세계4강에 들면서 제시된 것이다. 치고 달리는 기본에 충실한 체력 축구, 2대1로 돌파 등 개인기보다는 조직력을 중시하는 조직의 축구, 그리고 공수겸전에다 벌떼같이 덤비는 벌떼 축구,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혼(魂)의 축구 등.

이 미완성의 한국 축구를 히딩크가 완성시킨 것이다. 정신력과 기본체력에 중점이라는 같은 목표를 추구하면서도 리더십면에서 한쪽은'하면 된다'는 권위주의적이었던 것에 비해 히딩크는 '할 수 있다'는 민주적이어서 그 완성도를 높인 것이다.

한 예로 히딩크는 "우리는 유럽의 유명선수처럼 할 수 없다"는 열등의식과 패배주의에 빠져있는 우리 선수들에게 자신들의 훈련모습을 비디오 촬영해 발전 상황을보여주면서 "너는 이처럼 늘었으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다.

90분 내내 100%컨디션으로 달릴 수 있는 체력을 만들어 내는 파워프로그램이나 공격과 수비를 모두 소화시킬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를만드는 과정이 과학적이었다는 것도 히딩크의 성공 요인이다. 가령 같은 스피드훈련이라도 옛날에는 100m달리기를 했으나 이제는 20m 달리기를 반복하는 소위 순간 파워를 강조한 점 등이다.

이것이 선수들의 회복력을 높여줌으로써 파워축구를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 된 것이다.기술과 작전이 비슷하거나 조금 못해도 어느 수준에 이르면 그 다음은 정신력과 스피드가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보면 한국의 기적은 기적이 아닌 것이다.

이로써 한국축구는 선수들의 승리하겠다는 의지와 그리고 붉은 악마로 대표되는 전국민의 응원의 염원이 하나로 된 혼의 축구를완성시킨 것이다. 따라서 한국축구는 정신력이 강조된 혼의 축구인 것이다.

동시에 토털축구, 아트축구, 조직축구, 스피드축구, 패스축구,기(技)의 축구, 힘의 축구, 압박축구 등 소위 축구의 강점이란 강점은 모두 한데 묶고 소화해 낸 위대한 퓨전축구다. 따라서 이들의 서로 연결된 네트(network)축구라는 새로운 형태의 한국형 축구가 세계에 나온 것이다.

당장 러시아의 스포츠신문은 "우리도 히딩크가 필요하다"는 기사를 실었다. 태국 등에서는 한국이 이룬 기적, 우리라고 못 이룰 것 없다며한국축구를 아시아의 희망으로 올려놓았다.

우리가 경제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자 개도국들이 경쟁적으로 "우리는 박정희가 필요하다"느니 포항제철의 성공을 보고 "우리는 박태준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이제 축구에서도 한국을 찾고 있다. 그러나 히딩크만 있다고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강북에서는 귤도 탱자가 되듯 벤치마킹이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후진국간에 이미 연봉 500억원 정도의 스타가 되어버렸다면 과연 우리선수들처럼 뛰고 나니 '구역질이 나더라'고 할 만큼 죽자 사자 뛰려는 의지가 있을지 의문이다.

또 우리와 같이 농경문화와 이를 기반으로한 놀이문화나 대동사회 이념의 뒷받침 없이 붉은 악마 응원같은 응원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그러나 어떻든 한국형 축구가 성공모델로 뜨면서 사고(?)를 쳤다. 앞으로 세계축구의 방향은 분명 체력축구로 바뀔 것 같다. 세계축구가 이제 기술이나 작전 등에서는 세계화를 통해 평준화되었다는 것이 이번 대회를 통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성공으로 인해 고생길로 접어들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서상호 (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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