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극단적인 곳에서 예술이 나온다'.
정상적인 사람은 뛰어난 화가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불세출의 화가가 되기는 어렵다. 반쯤 미쳐야(?) 가능하지 않을까. 빈센트 반 고흐나 에르곤 쉴레가 그러했고, 이중섭도 어느정도 그러했다. 범인(凡人)보다 몇박자 빠른 사고와 관찰력을 갖추기 위한 필수요건이 아니겠는가.
마크 애론슨이 쓴 '아방가르드의 문화사(이후 펴냄)'에는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들의 심리를 묘사한 흥미로운 얘기가 나온다. "아방가르드(전위예술)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미지, 감각, 충동을 좇아 (작가 자신의) 내면으로 여행하는 방법이 있다.
이런 여행을 택하는 예술가들은 더욱더 강력한 상상력을 끌어내고자 술, 명상, 신비주의, 약물, 섹스, 심지어 자해를 이용한다". 정확한 얘기다. 피를 말리는 경쟁사회에서 제정신으로 사고를 한다는 자체가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 화가는 사석에서 "뉴욕의 화가 상당수가 호모이자 마약중독자"라고 말했다. 그곳 특유의 퇴폐적인 분위기 때문일 수 있지만, 자신을 가장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기에는 그런 방법이 필요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단지 외국의 사례일 뿐이다. 우리 상황과 잘 맞지도 않고, 통하지도 않는 방법이다. 국내에는 그런 극단적인 방법은 사용되지 않았지만, '술(酒)'이라는 매개물은 예전부터 유용하게 활용돼왔다. 얼마전 한 TV는 작고시인 천상병에 대한 프로그램에서 '그는 막걸리가 있어야 시상(詩想)을 떠올렸다'는 일화를 보여준 적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요즘도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신의 작업실로 발길을 돌리는 화가들이 여럿 있다. 개인전을 앞둔 한 화가는 "자신의 작품 절반 이상은 술에 취해 작업한 것"이라면서 "술이 손과 머리를 더욱더 자유롭게 한다"고 음주 예찬론을 털어놓기도 한다.
또다른 작가는 예전에 술 기운을 빌려 감각적이고 호쾌한 작품을 수없이 쏟아냈다. 요즘에는 건강 문제로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인지,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작업으로 방향을 바꿨다. 물론 취권으로 만든 작품과 맨정신에 만든 작품의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술을 먹기위한 핑계로 예술을 끌어 들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화가들은 여느 집단보다 유독 술을 많이 먹는다. 밤새도록 술을 먹는 경우도 흔하고(다음날 출근할 걱정이 없기 때문?), 술자리 분위기도 상당히 낭만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자유로움을 맛보고 있는 걸까.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