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은 문학사에 빛나는 작가의 생가(生家), 머물렀던 곳이나 작품의 무대가 된 곳까지 기념물로 보존.관리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들의 문학정신과 사상이 살아 숨쉬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더구나 명작의 무대가 됐던 고장이나 큰 업적을 남긴 작가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관광객들이 붐비면서 작가들의 생가.기념관 등은 문화 자산(文化 資産) 보존과 후대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서 뿐 아니라 지구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고부가가치까지 창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년 들어 한용운 생가, 정지용 생가, 유치환 문학기념관, 박경리의 토지문학관, 서정주 문학기념관 등이 속속 들어섰다. 일찍부터 빼어난 문인들을 배출해온 대구.경북에서도 육사 기념관, 동리.목월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고, 상화 고택 보존 움직임이 활기를 띠는가 하면, 이문열씨의 광산문학연구소가 문을 여는 등 오랜 아쉬움을 넘어 활기를 찾고 있는 분위기다.
▲원로 시인 구상(具常.83)씨의 삶과 문학을 읽게 하는 '구상 문학관'이 다음달 4일 개관된다 한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에 500여평(연건평 1천600여㎡) 2층 건물로 최근 완공됐으며, '문화의 달'에 맞춰 빛을 보게 됐다. 1층엔 그의 청년기, 월남 과정, 가족 관계,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서의 활동상, 문학 작품들, 화가 이중섭을 비롯한 지인들과의 만남 등 발자취를 담은 사진과 편지, 서화 등이 전시되며, 2층에는 그가 기증한 책 2만2천여권이 비치됐다.
▲서울에서 태어나 원산에서 자란 그는 1946년 필화사건을 겪으면서 월남, 53년부터 74년까지 20여년 동안 왜관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지금은 서울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살고 있지만 본적은 왜관으로 돼 있다. '강' '초토의 시' '그리스도 폴의 강' 등의 시집은 바로 낙동강을 바라보며 낳은 작품들을 담고 있다. 칠곡군은 22억여원을 들여 그가 오래 머물며 집필할 때 썼던 관수재(觀水齋)도 복원했지만, 그의 삶과 문학에 제2의 고향에 살아 숨쉬게 된 셈이다.
▲시인은 "우여곡절 끝에 문학관이 완성돼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라며 "왜관을 빼놓고 시를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내 삶의 큰 줄기"라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문화의 불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왜관에 한결같이 '관수세심(觀水洗心)'의 길을 가고 있는 그의 문학적 자산들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명소가 빛을 보게 됐기 때문이다. 의사였던 부인과 두 아들을 먼저 다른 세상으로 보내고 지금은 건강이 악화돼 두문불출하면서도 '문단의 거목'답게 문학정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그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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