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소비자의 권리

민망하지만 목욕탕 이야기를 좀 하려한다. 지난 광복절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피곤하기도 해서 시설 좋다고 자랑이 대단한 사우나를 찾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러하듯이 내게도 공중 목욕탕은 그저 씻기 위한 곳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지친 심신을 가다듬는 휴식처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기분 좋게 쉴 생각에 흐뭇해하며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콩나물 시루 같은 실내를 발견하곤 몹시 당황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앉을 곳은 물론이고 발 디딜 곳도 마땅찮았다. 여러 사람들이 자리를 찾아 서성이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손님들은 계속 들어서고 있었다.

이건 좀 심하다 싶어서 카운터를 지키는 아주머니에게 목욕탕 수용인원이 몇 명이냐고 물어봤더니 그런 거 모른단다. 그러면서 광복절이니 이해하란다. 조국 광복에 목욕탕이 무슨 기여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화롭게 목욕할 손님의 권리에 대해서는 도무지 인식이 없어 보였다.

다시 실내로 돌아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한 번 더 놀랐다. 다들 그 북새통이 당연하다는 표정들이었다. 울화가 치미는 와중에도 장난기가 발동해 어떤 아주머니의 자리를 차지하곤 "주인이 그러는데 오늘이 광복절이라서 서로 자리를 양보해야 한데요"라며 어깃장을 놓았다. 무슨 말 같잖은 소리냐고 펄쩍뛰면 같이 주인 흉을 볼 참이었다.

근데 아주 뜻밖에도 주인이 그랬냐며 선선히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사람들이 소비자로서 자신의 권리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하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귀중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으면 그 대가로 내가 누릴 혜택이 있는 것이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는 시정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적정 수용인원을 정하지 않았거나 정하고도 감독하지 않는 관공서를 나무라야하고 휴일을 핑계삼아 매상 올리기에 급급한 경영주도 질책해야 한다. 짐짝 취급을 받고도 항의하지 않는 자신도 반성해야 한다. 소비자로서 우리의 권리는 먼데서 찾을 것이 아니고 일상의 불편에서 찾아야 한다.

양정혜(계명대 교수.광고 홍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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