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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포로 출신 8명도 재회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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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2차 방문단에는 반공포로 출신 남쪽 이산가족이 8명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남쪽을 택한 사실이 알려져 북쪽 가족들이 피해를 입을 것을 걱정해 "옛날 일은 그만 이야기하자"고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또 한국전쟁 당시 행방불명자에는 국군포로, 반공포로, 비전향장기수 문제가 한데 엮여 있어 그 동안 남쪽이 국군포로 이야기를 꺼내면 북쪽은 반공포로 문제를 들고 나와 맞불을 놓곤 했다

황해도가 고향인 김형식(74·경기 평택시 평택동)씨는 "전쟁때 군대(인민군)에 나와서 가족들과 헤어졌다"고 말했다. 52년만에 아들과 동생을 만난 그는 상념에 잠긴 듯 줄담배를 피웠다. 그는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천(70)씨는 50년 9월 고향인 평안북도 구성군 천마면에서 집합명령에 따라 가족들에게 간다는 말도 못하고 트럭을 타고 인민군에 입대하게 됐다. 이씨는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자 만주로 건너가 넉달동안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이씨는 헤어질 때 9세이던 동생을 만나 아버지의 기일을 확인했다.

헤어질 때 1세이던 아들을 만난 김정만(71·강원 영월군 남면)씨는 금강산 근처 고성이 고향이다. 이번에 방문하는 금강산이 바로 고향인 셈이다. 김씨는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반공포로 석방때 남쪽을 택했다. 그는 남쪽에서 다시 군대에 들어가 중사로 예편했다.

반공포로 출신 가운데에는 김씨처럼 석방 뒤 신분 보장을 확실히 받기 위해 국군이나 경찰에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 반공포로 출신들은 남쪽에서 정착할 때 북쪽에서 해코지를 할까 봐 이름이나 생년월일을 바꾸기도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휴전협정이 막바지에 이르던 1953년 6월18일 남한 7개 수용소에 분산 수용돼있던 공산군 포로 3만7천여명 가운데 반공포로 2만7092명을 석방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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