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 황금동에 사는 김모(주부.38)씨는 명절 때 시댁에 다녀온 후로 1주일간은 짜증이 이어진다. 괜히 불쾌하고 분통이 터지기 때문이다. 김씨가 시댁과 관련해 못마땅한 것은 시어머니의 잔소리.
평소 별 간섭을 않던 시어머니지만 제사상 차릴 때만큼은 유독 잔소리가 심하다. 직장 일을 핑계로 늦게 도착해 거드는 흉내만 내다가 돌아가는 손아래 동서도 못마땅하다. 그럼에도 시어머니는 동서를 나무라기는커녕 귀여워만 한다. 용돈을 두둑이 드리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일을 좀 돕던 남편도 시댁에만 가면 사람이 싹 달라진다. 손 하나 까닥하려 들지 않는다.
남편에게 투덜거려 보지만 안 함만 못하다. 남편 최씨는 "다른 사람들은 다 군소리 없이 잘 하는데, 왜 당신만 까다롭게 구느냐"고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다. 그렇게 시작된 부부싸움은 '다시는 시댁에 안 간다'에서 급기야 '헤어지자'로 번지기 일쑤다.
달서구 용산동에 사는 임모(40)씨는 처갓집 가기가 두려운 사람이다. 처남은 변호사, 손아래 동서는 의사다. 중소기업 부장인 자신이 마련한 초라한 선물은 처남이나 동서의 빛나는 선물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조명에 불과하다. '작은 사위 덕에 즐거웠다'며 지난 여름 휴가 이야기를 꺼내는 장모도 못마땅하다.
장모가 그에게 던지는 눈빛엔 '남의 귀한 딸 데려가서 죽도로 고생만 시키는 구나'하는 의미가 숨어 있는 듯하다. 동서나 처남도 때때로 자신을 꺼리는 것 같아 빨리 처갓집을 나서고 싶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내가 올케나 동생을 부러워하는 말을 늘어놓는 것도 듣기 싫다.
가족 상담 전문가들은 남편이나 아내에게 엉뚱한 화풀이를 하지말고 당사자에게 '…이렇기 때문에 서운하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명절을 앞두고 명절과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면 잔소리처럼 들리지만 힘든 일이 끝난 후에는 상대도 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귀연(경북대학교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남편들이 아내들의 '명절 불평'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것을 조언한다. "보통 남편들은 아내가 불평을 늘어놓으면 자신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나 동서간 문제에 부딪히면 '남들도 다 참는데 당신은 왜그래'하며 지혜롭지 못한 면박을 주기 일쑤죠". 전 교수는 아내는 남편에게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어머니나 동서와 관련된 문제를 남편이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쯤은 아내도 알지요. 아내들은 다만 남편만이라도 자신의 고충을 이해해 달라고 말하는 겁니다". 전 교수는 남편이 아내의 고충을 인정하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강조한다.
전 교수는 또 남편이 처갓집을 꺼리는 것은 아내 쪽에도 문제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평소 친정에 가서 남편 이야기를 할 때는 자랑을 많이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황 서방이 돈은 좀 못 벌지만 늘 엄마 건강을 걱정해요. 어제는 제 생일이라고 선물을 사왔어요' 라는 식이죠.
평소에 딸이 남편 험담을 잔뜩 늘어놓는 데 친정 어머니 눈에 사위가 예뻐 보일 리 없죠". 전 교수는 친정 어머니의 사위사랑과 사위의 처갓집 사랑은 평소 아내 하기 나름이라고 말한다. 실험삼아 오늘부터 내년 설까지 남편 자랑을 해보면 친정 어머니의 태도는 분명히 변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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